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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중앙시평]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21대 국회가 매듭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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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4·10 총선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21대 국회는 5월 29일 종료된다. 현재 국회에 접수된 법률안은 2만5785건이고, 미처리 법안은 1만6333건이다(국회의안정보시스템). 정부 발의안은 3.2%로, 필자가 정부에서 일하던 15·16대에 비하면 의원 입법이 크게 늘고 가결률은 급감했다. 법사위에 계류된 민생법안은 400건 이상이고,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다수다. 5월 국회가 개점휴업하는 경우 민생법안은 무더기로 자동 폐기된다. 그중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방폐물) 관리 특별법도 들어있다.

우리나라 방폐물 관리 정책의 역정은 험난했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 후, 1983년부터 아홉 차례 추진된 고준위 방폐물 정책은 줄줄이 무산됐다. 당초 1988년 ‘방폐물관리기본방침’은 동일 부지 내에 95년까지 중·저준위 영구처분시설, 97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건설이었다. 그러나 89년 경북 후보지역 조사, 91년 안면도, 95년 굴업도 처분장 계획이 잇따라 백지화되고 2003년 부안사태에서 소요는 절정에 달했다.



원전 46년 역사 동안 미해결 과제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포화 상태

법 제정돼야 부지 선정 작업 시작

총선 후 5월 회기에서 처리하기를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정책 기조를 바꾸어 중·저준위 처분장과 고준위 중간저장시설을 별개로 건설하기로 한다. 2005년 중·저준위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은 유치지역 안에 건설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로써 19년 만에 중·저준위 처분장 부지는 경주지역으로 선정됐지만, 고준위 처분은 기약 없이 밀렸다.

잇따라 풍파를 겪으며 역대 정부는 ‘국민의 공감’을 얻겠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은 가치에 민감하고 찬반 선호가 갈리는 분야다. 뇌과학 연구는 사람의 가치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한 쪽이 다른 쪽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출발부터 삐걱거린다’는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고준위방폐물관리기본계획’(2016년)을 내놓았다. 원전 가동 38년 만에, 고준위 방폐물 관리정책 시도 33년 만의 결실이었다. 구체적 계획이 없는 로드맵이었으나 2020년까지 부지 선정, 2035년 중간저장시설, 2053년 영구처분시설 가동이라는 목표가 제시된다.

이후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부지 선정 작업에 들어가는 대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시킨다. 위원회의 첫 번째 권고는 특별법 제정이었다. 후속 조치로 발표된 제2차 기본계획(2012년)은 제1차와 내용이 비슷해서, 부지 선정 절차 개시 후 13년 내 부지 확보, 20년 내 중간저장시설 건설, 37년 후 영구처분시설 확보였다.

선진국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성공한 핀란드는 1977년 원전 도입 후 6년 만에 부지 선정에 나서 2000년에 올킬루오토를 부지로 확정한다. 이후 2016년 착공으로 450m 지하에 ‘온칼로’(洞窟)를 건설해서 내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제2주자인 스웨덴은 1977년 법 제정 후 부지 선정에 들어갔으나 공사를 하려다 반발에 부딪쳐 표류한다. 그 뒤 1992년 원점으로 돌아가 지방정부에 서한을 보내는 등 재작업을 거쳐 2009년 포스마크를 부지로 선정한다. 2022년에는 고준위 처분시설 사업 허가를 발급했다.

우리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임시저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저장공간이 차고 있다. 그동안 저장조의 포화 시점이 계속 바뀌면서 신뢰를 잃은 측면이 있으나, 고밀도 조밀 저장대와 저장대 추가 설치 등으로 대응해 왔다. 이제 한계에 이르러 2031년 고리·한빛부터 2032년 한울, 2044년 신월성 등의 순서로 포화된다고 한다. 2022년 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을 녹색 경제활동으로 포함하면서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물 최종처분 시설을 운영하는 계획을 수립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21대 국회는 4개의 고준위 특별법안을 놓고 십여 차례 논의한 끝에 대체로 두 가지 쟁점을 남겼다. 원전 부지 내 건식 저장시설 규모와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확보 시점이 그것이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 원칙에는 기술혁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재검토할 수 있는 의사결정의 ‘가역성’이 있다. 즉 조건 변화에 따라 법률은 변경할 수 있다. 이쯤해서 최종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원전은 현존하는 기술이다. 원자력 전기를 쓰는 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반드시 해야 한다. 원전 가동 46년 역사에서 30여년 만에 보수·진보 정권이 각각 두 차례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이제 2차 기본계획 시행을 위한 특별법 제정 차례다. 법적 근거가 있어야 부지 선정과 지역주민 지원을 할 수 있다. 더 이상 미룬다고 새롭게 나올 것도 없다. 이대로 ‘폭탄 돌리기’를 계속한다면, 전기가 끊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20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됐던 전철을 밟지 말고, 5월 회기 내에 국가적 난제를 풀어야 한다. 한때 국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AI 시대의 21대 국회가 국가 전력 공급체계 안정화 등 민생법안 처리의 책무를 다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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