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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北 공범' 러 반대…'대북 제재 감시탑' 안보리 패널 임무연장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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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의 이행을 감시하고 위반 행위를 조사하는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다음달 30일부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임기 연장에 반대하면서다. 전문가 패널이 북·러 간 불법 무기 거래의 정황을 세세히 밝히는 데 대한 사실상의 보복성 조치로 볼 여지가 있다. 가장 강력한 감시자의 부재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는 북한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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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웹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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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비토'로 임기 종료



유엔 안보리는 28일 오전 10시(현지시간, 한국 시간 밤 11시)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표결을 했지만, 러시아가 거부권(비토)을 행사하면서 부결됐다.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한·미·일 등 13개국은 찬성했고, 중국은 기권했다. 이에 따라 현 임기가 끝나는 다음 달 30일이 지나면 전문가 패널의 활동은 15년 만에 종료된다.

전문가 패널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1874호에 따라 창설됐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러시아, 싱가포르 등 8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 8명으로 이뤄진다.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상황에 대해 독립적·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매년 두 차례에 걸쳐 보고서로 안보리에 제출 및 일반에도 공개한다. 위반 의심 행위를 저지른 당사국이나 단체에 해명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회원국의 제재 준수를 권고한다.

회원국의 신고와 패널의 조사를 기반으로 작성되는 연례 보고서는 대북 제재 이행과 관련해 그간 가장 공신력 있는 문서로 평가받았다. 이번 패널 임기 종료 결정과 관련해 "범죄가 들끓는 지역에서 가동하던 감시탑이 사라지는 의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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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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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꼬리 잡히자 '파국' 택해



불길한 조짐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2009년부터 매해 관례적으로 통과되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결의가 이번처럼 특정 국가의 반대에 부딪힌 것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안보리는 지난 22일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었지만, 이날로 한 차례 연기했다. 러시아는 대북 제재 전반은 물론이고 패널의 객관성과 신뢰성 등 문제 삼으며 임기 연장에 반대했다고 한다.

특히 현재 유지되는 대북 제재 전체를 재검토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사실상 제재를 백지화할 수 있는 일몰 조항(sunset clauses)을 추가하자는 취지였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가 최근 패널의 활동에 계속 딴지를 걸고 위반 사례 확인 작업에 철저하게 비협조적이었다"며 "패널 임기 종료를 위협하며 일종의 딜(deal)을 걸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연례 패널 보고서에는 북·러 무기 거래와 관련한 다양한 정황이 담겼지만, 이에 대한 러시아의 답변은 전혀 싣지 못한 채 "러시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만 반복됐다. 북한과 불법 무기 거래를 한 정황이 유엔 차원의 보고서에도 낱낱이 담기자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의 권한을 남용해 패널 자체를 파국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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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에 첨부된 나진항과 나진역 근처 철도를 구글 어스로 캡처한 장면. 대북제재위는 이날 공개한 615쪽짜리 보고서에 위성사진을 근거로 앙가라호, 마리아호 등 4척의 러시아 선박이 지난해 8월에서 12월 사이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실어 러시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두나이항까지 드나드는 정황을 담았다. 제재위 보고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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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사실상 제재 '백지화' 주장



특히 러시아가 요구한 일몰 조항 도입은 그간 유엔이 수립해온 대북체제 자체를 훼손하겠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최근 불법 핵·미사일 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는 등 태도 변화가 전혀 없는데도 현존하는 재제의 적시성을 검토해 해제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라 다른 이사국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요구다. 실제 한·미·일은 어떻게든 패널을 연장하기 위해 러시아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러시아가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이날 결정은 북핵으로 인한 동북아 전체 안보를 더욱 위험에 빠트리고 국제 비확산 체제에 큰 타격을 가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는 국제사회가 공인한 5개 핵보유국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주도해온 국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미국과 군축과 비확산 문제를 활발히 논의했고, 지금은 중단됐지만 신전략무기감축협정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으로부터 포탄과 탄약을 얻겠다고 국제 비확산 체제에서 수십년간 쌓아온 지분을 부정한 셈이다.



스스로 쌓은 감시탑 무너뜨린 셈



러시아의 패널 부정은 자가당착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사치품인 고급 승용차를 선물로 준 이후에도 러시아는 "한국 정부가 의문이 있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위를 찾으라"고 훈수를 뒀다. 그래놓고 제재위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패널을 없애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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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아우루스' 전용차를 처음 타고 등장한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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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문가 패널이 사라지더라도 대북 제재 체제 자체는 견고히 남는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방식의 노력이 배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한·미·일과 호주, 유럽연합(EU) 등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이 제재 이행 감시, 보고서 발간 등 전문가 패널의 기능을 대체할 협의체를 꾸릴 수도 있어 정부는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 중이다.

다만 기존 전문가 패널의 권위를 대체하긴 어려울 거란 지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와 중국이 대북 제재를 가장 많이 위반하는 국가인데 이들이 어디까지나 대북 제재위 전문가 패널 안에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유엔의 시스템 안에서 이들을 향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며 "한·미·일 등 우방국이 자체 보고서를 내더라도 중·러는 더욱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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