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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행기…'옥시아나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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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학자 로버트 바이런이 조명한 실크로드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과 칸다하르를 잇는 고속도로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갈 때쯤 여행을 떠올리다가 내친김에 여행서를 들춰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론리플래닛' 같은 구체적 정보를 담은 여행 도서를 펼쳐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저자의 감정과 밀착된 산문을 읽으며, 가끔 그가 쓴 문장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읽어나가야 하는 그런 책이 위안을 줄 때도 있다.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나 앙드레 지드의 '콩고 여행' 같은 에세이가 바로 그런 책들이다. 파묵이 묘사한 이스탄불의 골목골목과 언덕배기를 읽다 보면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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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뒤 만월
[EPA=연합뉴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여행 작가인 로버트 바이런(1905~1941)이 쓴 '옥시아나로 가는 길'(원제: The Road to Oxiana)도 파묵의 '이스탄불'이 그랬듯, 독자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행서다. 저자가 말한 옥시아나란 아프가니스탄 북쪽 국경지대를 흐르는 아무다리야강 주변 지역을 말한다.

저자는 700여년 전 중국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탐험했던 마르코 폴로와 정반대 방향으로 여정을 짰다.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시작해 키프로스,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페르시아를 거쳐 아프가니스탄에 다다른다. 10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이 지역의 건축을 포함한 예술 문화와 조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감정에 눈뜬다. 책은 그런 감정의 흐름을 여과 없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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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힘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여행하다 보면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생기기 마련이다. 여행 파트너가 에드워드 기번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닭고기와 양파가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장면, "달빛에 물든 포퓰러 정원을 바라보며 달콤한 포도를 한 바구니나 먹는" 장면에서는 여행의 참맛이 느껴진다. 이곳에선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현지인의 뼈 때리는 조언과 의사와 약이 없어 아편 1회분과 검은 꿀 한 그릇을 먹으며 병을 이겨내야 하는 장면에선 고통도 전해진다.

여행에서 오는 소소한 감정 변화 외에도 중앙아시아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선 역사 논문이나 학술서 못지않은 전문성이 느껴진다. 특히 한때 티무르와 그의 자손이 통치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 있게 통찰하는 저자의 식견이 상당하다. 다만, 현지인에 대한 제국주의적인 시선, 즉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롭지 않은 기행문이라는 점에서 책은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장단점이 모두 드러나는 책이지만, 여행에 대한 욕망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손색없는 여행서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비평가 폴 퍼셀은 이 책에 대해 "전간기(戰間期·Interwar period) 소설에 '율리시스', 시에는 '황무지'가 있다면 여행기에는 '옥시아나로 가는 길이 있다"고 평했는데, 좀 과한 측면이 있지만, 이 책의 위상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말일 수 있다. 책은 서구의 여러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생각의힘. 민태혜 옮김. 600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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