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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무능한 정치는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아”···비극 목격한 청년들이 대자보 붙이고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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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30유권자 네트워크 소속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유정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유연주씨 언니, 임장표 고려대학교 재학생(왼쪽부터)이 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 전세사기, 이태원참사,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초등교사 사망 사건 관련 ‘청년에게 호소하는 대자보’를 부착한 후 촬영에 응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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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빈씨(31)는 일명 ‘빌라왕’ 김모씨의 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사기 피해를 인지한 지 2년이 넘었지만 보증금을 돌려받기는커녕 1억원이 넘는 전세 대출금을 끌어안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으로서 그는 수많은 피해자를 만났다. 이씨는 사회초년생·신혼부부에게 집중된 이 피해가 ‘청년 문제’임을 실감한다고 했다.

유정씨(27)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동생 연주씨를 잃었다. 159명의 희생자 중 74.8%(10대 13명, 20대 106명)가 10·20대였다. 유씨 또래이기도 한 수많은 청년들의 죽음 앞에서 그를 포함한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촉구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30일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신승환씨(25)는 2021년 5월에 전역한 해병대 예비역이다. 대학생인 그에게 지난해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는 채 상병 사망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그날 물살에 휩쓸리지 않았을 뿐 비슷한 하루를 겪었을 군인이 한 명뿐이었겠나, 앞으로도 한 명뿐이겠나”라는 의문을 거두기 힘들다고 했다.

포포씨(활동명·24)는 교육대학교 졸업을 앞둔 예비 교사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지난해 사망한 사건으로 공론화된 악성 민원 등 교권 문제는 그에게 곧 닥칠 미래다. 포포씨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만 현장은 여전하다”며 “주변 교사 선배들은 늦지 않았으니 도망가라고, 더 나은 직업을 가지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오는 4·10 총선을 앞두고 네 명의 청년들이 상처 입거나 세상을 등진 청년들을 호명했다. 네 사람은 ‘2030 유권자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지난 21일부터 청년 문제를 알리고 2030세대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제안취지문에서 “지금의 무능한 정치는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총선에서 청년은 실종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어떤 청년의 죽음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했다.

2030 유권자 네트워크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알리는 방법으로 ‘대자보’를 택했다. 사전투표가 있는 4월 첫째주까지 청년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교에 대자보를 붙여 고민을 나누고,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홍보할 계획이다.

이를 처음 제안한 이씨는 “총선이 다가오는데도 청년 문제가 조명되지 않고 다른 공약만 난무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청년의 문제를 바꾸기 위해선 청년들이 직접 정치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자보를 준비했다”고 했다.

21일에는 유씨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 초입에서 참사 원인 규명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썼다. 22일 예비교사 포포씨는 ‘서초구 초등학교 사건 그 후, 우리는 교사도 학생도 죽지 않는 교실을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서초구 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신씨는 ‘누구나 그 물살에 휩쓸릴 수 있었다’는 대자보를 자신이 재학 중인 경북대학교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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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북대학교 학생회관에 재학생 신승환씨가 붙인 대자보(좌). 서초구 한 초등학교 인근 버스정류장에 예비교사 포포씨가 붙인 대자보(우). 2030 유권자 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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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쓴 ‘전세사기 외면하는 F학점 국가’ 대자보까지 더해, 네 장의 대자보가 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함께 붙었다. 취지에 공감해 대자보 부착을 함께 한 고려대 재학생 임장표씨(22)는 “채 상병 사건도 그렇고, 잊을 만하면 동갑내기들이 죽어가는 사회”라며 “청년으로서 이런 문제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네 사람이 쓴 글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로 함께해달라”는 외침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자리하지 못한 신씨는 통화에서 “누가 봐도 정치권이 젊은 층에 무관심한 상황”이라며 “특정 당을 뽑자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목소리를 잘 대변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라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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