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자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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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된 '입틀막 사건'은 공공장소에서 정치인을 경호하는 문제와 시민의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환기시켰다. 필자가 최근 미국에서 직접 목격한 사례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미국의 한 고위 정치인과 시위대 사이에서 발생한 충돌이다.
미국 동부의 한 지방 대학 세미나에 연방 상원의원이 초대됐다. 상원의원이 자리에 앉아 인사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무리의 시위대가 진입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그 상원의원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 그의 가족 사업이 큰 이익을 보았다는 것이다. 시위대가 크게 구호를 외치자 상원의원은 말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그때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감정이 격앙된 시위대 중 한 청년이 상원의원 자리로 다가가 삿대질을 하며 한국 사람들도 익숙한, 그러나 여기에 인용할 수 없는 비속어를 그의 면전에서 반복해서 외쳐대기 시작했다. 더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 청년이 멈추지 않자 이번에는 상원의원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화난 기세로 청년에게 다가갔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몸싸움이 일어나거나 심지어 주먹이 날아들 수도 있었다.
그때 의원 보좌관이 둘 사이를 몸으로 막아서 그들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 시위대 청년을 확 밀어 버렸다. 청년은 뒤로 넘어지며 반쯤 열린 문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가 다시 엉거주춤 일어서는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카펫 바닥이라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때 그 보좌관이 문을 닫아 버렸다.
필자는 청년이 문을 꽝꽝 두들기거나 다시 진입을 시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내에는 아직도 한 무리의 시위대가 남아 있었고, 그들은 시위 구호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상원의원은 그들에게 "당신들 앉아서 나와 대화할래요?"라고 제안했다. 그때 경찰이 들어왔다.
제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시위대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먼저 밝히며 "건물주가 여러분이 건물 바깥으로 퇴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법 침입'을 이유로 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로 몰아내지는 않았다. 경찰은 몇 번 더 "나가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상원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이 있는 곳으로 걸어 나와 "와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악수를 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10여 분간 했다. 그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쯤, 이를 쭉 지켜보던 경찰은 시위대에게 다시 "나가 주십시오"라고 말했고, 시위대는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났다.
생각해 보니 그 상원의원은 시위대가 나름대로 항의 시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준 것이고, 10여 분간의 '악수 순례'는 그 수단이었다. 시위대도 어느 정도 자신들의 시위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는지 물러난 것이었다. 그 정치인은 그 후 한 시간에 걸쳐 참석자들과 원래 세미나 주제에 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떠나기 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위하는 저 사람들도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열정적이죠. 하지만 그들이 자리에 앉아 제 말을 듣고 소통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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