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메우는 2차병원
수술·진료, 전문의 중심 운영
전공의 집단 사직 불똥 피해
입소문에 전국서 환자 몰려
韓총리 “강소 전문병원 육성”
3차 병원 비해 접근성도 뛰어나
필수의료 살리려면 맞춤 지원을
상급병원 쏠린 지원책 변화해야
#2. 같은 날 부산 북구 덕천동 부민병원. 전체 374병상 규모의 부민병원은 부산 시민들에게는 심뇌혈관센터와 관절 전문병원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부민병원에서도 전공의 4명이 사직했지만 환자 진료나 중환자실과 응급실 가동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석증으로 3주 전부터 부민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는 60대 여성 환자는 “진료와 처방 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불편한 점도 없다”고 말했다. 부민병원에선 60명에 달하는 전문의들과 440여명의 간호사·간호조무사가 입원환자 340명과 하루 평균 1000여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2차 병원 찾은 환자들 이른바 ‘전공의 집단이탈’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지난 15일 부산 북구 부민병원 2층 접수대 앞 대기실에 환자와 가족들이 앉아 있다. 부산=오성택 기자 |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강소 전문병원과 종합병원들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수술·진료 등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서울 ‘빅5’(서울아산·서울대·연대세브란스·서울성모·삼성서울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3개월마다 뇌혈관 질환 약을 처방받으러 부민병원을 찾는다는 70대 남성은 “TV를 통해 전공의들이 파업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까지 병원 진료와 처방 관련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 2차 병원인 이들 전문·종합병원이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를 비켜 갈 수 있는 이유는 전문의 중심의 인력 구조 덕분이다. 2차병원 협의체인 대한종합병원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3387개 2차 병원 중 전공의를 채용한 수련병원은 17%인 201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83%는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무릎과 어깨 관절경을 비롯해 인공관절치환술 등 약 4000건의 수술이 이뤄지는 부평힘찬병원에선 수술과 진료는 전문의들 몫이다. 부평힘찬병원에는 정형외과·신경외과·마취통증의학과·내과·재활의학과 등 전문의 17명과 간호사 80여명이 근무한다. 척추질환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간병·간호통합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전국에서 환자가 몰린다. 김 병원장은 “3차병원에 비해 접근성은 좋고 비용은 합리적이다 보니 환자들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자신했다. 부민병원 문상호 행정부원장도 “전공의는 인턴 2명, 레지던트 4명뿐”이라며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전문의들이 메우면서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2차 병원 찾은 환자들 인천 부평힘찬병원 의료진이 말기 퇴행성 무릎 관절염 환자에게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있는 모습. 부평힘찬병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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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강소 2차 병원 육성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세부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3400여개의 2차 종합병원과 분야별 전문병원의 시설과 인력 규모를 키우고 수가 인상 등을 통해 이들 병원을 집중 육성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근 “규모가 작은 전문병원도 실력이 있으면 상급종합병원만큼 수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에 “수가 체계부터 응급환자 이송체계까지 전문병원 육성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전문병원은 3차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췄음에도 수가는 상급종합병원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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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은 15%, 종합병원 10%, 병원 5%, 의원 0%의 수가 지원이 이뤄진다. 충북 청주 한 뇌혈관 전문병원 관계자는 “전문병원으로 지정되더라도 그 명칭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혜택은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병원 측은 이번 의료 공백 사태가 상급종합병원에 쏠려 있는 정부 지원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했다. 부민병원 최창화 병원장은 “전국에 분야별 전문병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대학병원과 이른바 서울 ‘빅5 병원’으로 몰리는 것은 의료장비와 인력문제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청주지역의 또 다른 전문병원 관계자는 “전문병원 지정 후 별다른 변화는 없고 현수막 내걸고 병원 홍보하는 게 전부”라며 “수가 조정, 의료기기 등의 지원이 이뤄지면 병원이나 전문의는 물론 환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 북구 부민병원 모습. 부산=오성택 기자 |
생명이 위급한 중증환자나 암 환자들은 대부분 2차 병원으로 전원하지 않고, 대부분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대기 중이다. 2차 병원이 아무리 유명한 전문병원이라고 해도 설비와 장비, 의료인력 등에서 상급 종합병원과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전원을 결정하지 못한다고 한다. 최 병원장은 “좋은 시설과 장비, 훌륭한 의료진이 많은 병원에서 진료 받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욕망”이라며 “환자들이 3차 병원으로 몰리는 것을 막고, 지방의료·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분야별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인천·청주=오성택·강승훈·윤교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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