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 인터뷰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 의원은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진행한 공천 심사에서 탈락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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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찾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책상 위에는 ‘국회도서관 이용 최우수상’ 상패가 놓여있었다. 그는 “경선을 끝내고 오랜만에 사무실에 와보니 ‘국회도서관 입법지원 서비스를 폭넓게 활용해 뛰어난 의정활동을 했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이 상을 줬더라”며 “그런데도 우리 당에선 나보고 현역 의원 ‘하위 10%’라고 한다”며 웃었다.
이틀 전 치러진 결선에서 하위 10% 페널티로 득표 30%를 감산당하고 강성 친명(친이재명)계 정봉주 전 의원에게 패배한 박 의원은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기대한다”며 “다만 좋은 결과가 나쁜 과정까지 대변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총선 후 이재명 대표가 ‘사천 파동’뿐 아니라 위성정당 창당에 따른 진보당과의 연합, 조국혁신당과의 사실상의 연대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총선 이후 반듯하게 정치하려는 사람들, 상식적으로 정치하려는 사람들, 국민 눈높이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민주당, 다양성의 민주당을 재건해 야권 전체를 통합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이 질의하는 모습. 박 의원은 재임 기간 백봉신사상, 제3회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동아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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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결과에 대한 소회는
“내 예상치와 완전히 다른 결과여서 실감되지 않았다. 권리당원과 일반 국민투표에서 모두 과반이 넘었다. 투표에선 이기고 개표에선 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 뜻밖에 이상하게 담담하다. 어제 저녁 낙천한 의원 3명과 만나서 ‘민주당 바보들 모임’을 하기로 했다. 바보처럼 당에 남아서 경선을 끝까지 다 치르고 당에 정성을 다하는 바보들, 이 구박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민주당아 남아있는 바보들의 만남을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문제였다고 보는가
“민주당은 신뢰를 잃었다. 하위 10% 평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공천관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는데 공관위조차 절차를 어기고 곧장 기각했다. 임혁백 공관위원장이 내게 전화로 ‘나도 잘 모른다’는 취지로 말한 것도 황당했고, 점수를 모두 공개하겠던 약속을 두 번이나 뒤집었다. 절차 위반 문제에 대해선 가처분신청을 걸면 100% 승소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까지 하면 당이 진짜 망가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가 웃으면서 ‘동료 의원 평가 0점을 맞은 분도 있다’고 말했는데
“절차적 시스템이라는 게 조롱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차라리 박용진 동료평가가 꼴등이라고 공개했으면, 당장 반발이 나왔을 거다. ‘나는 박용진에게 0점을 준 적이 없다’는 동료 의원이 당연히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럴까봐 평가기록지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이른바 불신, 신뢰를 잃어버린 과정이다. 이게 두고두고 민주당에 큰 상처가 될 것 같다.”
―사실 ‘개딸’(개혁의딸) 등 강성 지지층을 공략해서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었다
“민주당이 사막화로 가는 길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막은 조용하고 어떤 생명체도 없다. 민주당을 이어온 생명은 다양성이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상생작용을 일으켜 에너지를 만들어왔다. 민들레도 피고 들꽃도 피고, 새 노랫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는 생명 가득한 당이어야 한다. 우세종 하나로만 가면 단 하나의 유행병, 바이러스 침범으로 다 멸절돼버린다.”
박용진 의원(단상 위)이 지난해 12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중앙위원회에서 당헌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때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60대 1 수준에서 20대 1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해 ‘강성 지지층 권한을 강화’ 및 ‘이재명 대표 사당화’라는 비판을 들었다. 동아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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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주당의 가장 문제는 무엇인가.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사막화 과정에 접어들어, 조금은 다른 의견과 애정 어린 비판조차 용납 못하는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DJ)도 비주류에게 공간을 열어줬다. 조순형, 정대철 이런 분들이 DJ를 얼마나 ‘성가시게’ 했나. DJ가 당시 자기를 비판하는 이해찬 전 대표에게도 공천을 안 주려고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찾아가서 그건 안 된다고 결사반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DJ가 마지막에 ‘아 맘대로 하시오’하고 수용했다고 한다. 만약 DJ가 이해찬, 노무현을 내쳤다고 한다면, 그는 야당 당수로만 끝났을 것이다.”
“당 대표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책임지는 자리다. 이 대표가 선택한 길이라고 보고, 이번 총선 결과로 선택에 대한 책임이 생길 것이라 본다.”
―총선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어렵겠지만 민주당이 이기길 기대한다. 민주당 내의 비정상을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선거를 통해 제1야당으로서 나라 전체의 비정상을 바로잡을 의무도 있다.”
―그럼 이 대표는 ‘내 선택이 맞다’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바보는 아니다.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쁜 과정을 대신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과정에 대한 기억은 따로다. 과정에 대한 평가는 따로 있어야 한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유독 탈당이 많았다. 당을 떠난 동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의 억울함과 분노, 왜 이해 못하겠나. 지금도 나한테 같이 하자고 연락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각자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최종 결과, 그리고 4‧10 총선 이후 민주당 재건을 위해 어떤 역할을 서로 할 수 있는지를 같이 고민할 거라고 본다.”
“김종민 금태섭 조응천 의원 등 모두 정치적 선택은 달리했지만, 적어도 그럴듯한 정치, 국민이 흐뭇해할만한 정치, 바른 정치를 하려는 뜻은 같다. 그 분들이 당을 나갔지만 국민의힘으로 가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여전히 민주당 자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민주당이 철학적인 기반이 같지 않은 군소정당들, 우리 사회 일반적이지 않은 인식들로 무장한 세력이랑도 같이 하려고 하는데, 새로운미래나 개혁신당이 비록 쓴소리를 하고 나갔지만 야권 전체 승리를 위한 대연대라는 틀 안에서 이번 선거에 대한 판을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
박용진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장에서 송갑석 의원(맨 오른쪽)의 대화를 듣고 있다. 비명계인 송갑석 의원도 이번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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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기반이 같지 않은 군소정당들을 언급했는데, 민주당이 진보당과 선거 연대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물론 진보당의 인식과 시선도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그만큼 의석수를 가지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그 이상을 반영하려고 한다. 울산 북구에선 진보당 후보로 단일화까지 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과의 후보 단일화 문제 때문에 민주당은 두고두고 곤욕을 치렀다. 2020년 총선 때도 위성정당 문제 때문에 두고두고 반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통진당의 후신인 진보당과의 연대전술, 더 노골적 형태의 위성정당이 반복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걸 전략적으로 선택했고 진두지휘했기 때문에 앞으로 지방선거, 대선에서 두고두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등 조국혁신당과의 암묵적 협력 기류도 있다
“조국혁신당이 정말 야권 파이를 키우는 것이 맞는가. 나는 기존 민주당 걸 나눠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조국혁신당의 20대 지지율이 0%, 30대 지지율이 1%(한국갤럽, 3월 5~7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전화조사원이 인터뷰, 표본오차 ±3.1%포인트 95%신뢰수준, 응답률 14.4%)였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이 20대 지지율을 끌고 오지 못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조국 사태’에 대해 몇 번을 공개적으로 사과했는가. 과거 전략적인 판단 실수를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당 뿐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이 각자 지지층만 바라보며 강성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각하다. 아까 민주당이 사막화되고 있다고 했는데, 한국 정치는 트럼프화되고 있다. 정치는 결국 누군가는 이기고 지는 과정이지만, 그 절차에 대해선 투명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 합의한 대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두고 통합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데,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자기 진영 안에서만 힘을 얻고, 밖에 나가선 주장이 힘을 잃는 상태다. 나는 예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권한을 가진 자기가 그냥 하면 되지 왜 굳이 저들을 설득하고 대화하려 하지’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설득의 과정이라 생각하셨던 거다. 그런 김대중 노선, 만델라 노선을 미련하고 바보스럽게 꾸준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고, 참아야 하는 일이 있다. 이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한국 정치가 트럼프화되어 가는 와중에도 상식과 바름을 갖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비록 다 패배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게 맞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다.”
“연락은 없었다. 그 때도, 지금도 그 말에 큰 무게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문제를 떠나서 정치인이라면 자기가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과 여건이 달라졌다고 말을 바꾸거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 많아지면 무신불립의 상황이 된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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