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사건' 수사 불충분 상황서
주호주대사 임명 뒤 '약식조사' 지적
공수처 "수사 협조 약속받아" 진화
법조계 "수사 차질 불가피" 우려
일각 "불출석 땐 부담… 협조할 것"
"李, 당시 '사건 재검토' 직접 명령"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이 대사에 대해 수사팀에서 생각하는 만큼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수사팀은 추가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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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공관 대사 신분인 피의자를 대면조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이 대사가 소환조사를 포함한 수사 과정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물리적 거리는 있지만 외교관 신분으로서 국내에 들어와야 할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고 답했다. 이 대사가 조사받으며 제출한 휴대전화가 사건 당시 사용한 휴대전화가 아니라 새 휴대전화라는 의혹에 대해선 “확인이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 신분이던 지난해 7∼8월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순직 사건의 책임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적법하게 이첩된 수사 기록을 회수하고, 수사단의 수사결과 발표를 돌연 취소하는 등 수사 외압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대사는 이 사건이 회수된 후 사건 재검토에 난색을 표하는 국방부 조사본부 책임자를 불러 “사건을 재검토하라”고 직접 명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이 대사가 주호주 대사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사흘 만인 7일 이 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약 4시간 동안 조사했다. 공수처는 이 대사를 상대로 이 의혹 전반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확인했다.
통상 의혹의 ‘윗선’으로 꼽히는 피의자에 대한 조사는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물 확보와 하급자 등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끝난 뒤 이뤄진다. 반면 이 대사의 조사는 지난 1월 압수수색한 국방부와 해병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진행됐다. 이에 공수처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약식 조사’를 진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간 조사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법무부는 조사가 이뤄진 다음 날인 8일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하며 “최근 출석조사가 이뤄졌고 본인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고발장이 지난해 9월쯤 공수처에 접수됐고, 출국금지 조치가 수회 연장되었음에도 (이 대사에 대한) 단 한 번의 소환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의 출금 해제에 따라 이 대사는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대사의 출국으로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내에 있으면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을 때 체포 영장 발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호주에서 그럴 수는 없지 않나”며 “(이 대사가) 바빠서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면 조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출국 전 이뤄진 조사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사실상 2∼3시간 동안 (이 대사 측의) 해명만 들은 것뿐”이라며 “조사라기보단 일종의 면담”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이 대사가 부담을 느껴 수사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공수처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가 수사를 마무리짓는 단계에서 이 대사가 출석하지 않으면, 이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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