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 안되자 직접 코인 매수
개인 투자자의 관심이 국내 증시를 넘어 국내외 비트코인 현물로 향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 대기성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 규모가 이달 첫 거래일인 3월 4일 57조8852억원에서 11일 53조3436억원으로 7.8% 감소했다. 증시가 답답한 장세를 이어가며 개인투자자 일부가 코인 시장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국내 증시는 기관 투자자 순매수세에 힘입어 상승장으로 마감했지만 개인들은 코스피에서 1787억원, 코스닥에서 1540억원을 순매도했다.
비트코인 원화거래 시세가 개당 1억원을 넘기면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미 가격 급등으로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연초 7%에서 30%까지 치솟았다. 12일 오후 현재 비트코인은 국내 원화거래소 업비트 시세 기준으로 개당 1억원을 훌쩍 넘겨 신고가를 경신 중이다. 이날 오후 2시께 1억100만원에 근접했고 오후 4시 현재 1억160만원을 넘어섰다.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 상한가를 갈아치운 이후 즉각 하락하지 않고 시세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서구 금융 당국의 우호적인 규제 의사결정과 시장 흐름이 꼽힌다. SK증권은 전날 보고서에 "비트코인 가격이 한 때 7만 달러 선을 돌파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대체로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지속되고 있다"며 "6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60% 가까이 반영되고 있는 상황도 우호적"이라고 진단했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글로벌투자분석실 또한 12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의 가격 급등세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 금리 인하 기대감,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등이 호재로 작용한 데 따른 것"이라며 "미국이 11개 비트코인 ETF 상장을 승인한 이후 100억 달러 넘는 자금이 유입됐고 전날 영국에서 가상화폐관련 상장지수증권(ETN) 승인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추가 상승세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 17일 종가 기준 코스피가 2435.90포인트에서 2월 26일 2647.08포인트로 8.7% 가량 상승했으나 이후 정체된 국내 증시와 대비되는 양상이다. 이 기간 코스피의 우상향 동력은 정부가 올초 국내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을 예고하고 2월 하순 발표한 밸류업 지원방안과,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의 괄목할 성장세와 국내 관련 수혜주에서 나왔다.
하지만 국내 증시는 3월 들어서면서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증권 보고서는 "코스피는 엔비디아 (주가) 급락 영향에 반도체주 차익실현 매물을 출회하며 IT 업종이 약세를 보이는 등 조정을 받으며 하루만에 하락 전환했고 코스닥은 제약바이오와 엔터주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외국인과 기관 매도세에 강보합세를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2월 하순 발표된 밸류업 프로그램의 윤곽 또한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에서 투자자에게 긍정적 신호로 작용하지 못했다. 6월 밸류업 프로그램 최종안 발표까지 기간이 3개월가량 남아 있는 가운데 증시의 상승 여력은 부족해졌고, 단기 자금을 움직일만한 국내 투자처는 제한돼 있다. 투자자는 자연히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나 시세가 급등하고 있는 대장격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에 눈길이 갈 수 있다.
운용규모 10조 달러 이상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최근 공시한 자료를 통해 올해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승인을 받아 출시한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인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ETF(IBIT)'을 운용하기 위해 19만5985개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사들였다는 내용을 밝혔다. 지난달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보유했다고 공시한 비트코인 19만3000개를 넘어선 물량이다.
반면, 정부와 금융 당국은 2017년부터 금융기관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거나 투자하는 것을 금지해 왔다. 지금처럼 단기 투자 자금이 비트코인에 대거 몰리는 가운데 앞으로도 제도권 내에서 이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 해당 자금은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나 해외 ETF 관련 시장으로 이동할 공산이 크다. 금융 당국이 이를 의식해 비트코인 투자 상품의 규율 범주를 차등화해 점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이미 올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이나 해외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이 기존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을 승인한 미국은 우리나라와 법 체계가 달라 이 사례를 국내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즉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에 법 개정이 전제됨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해외 비트코인 선물 ETF 거래를 제한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 입장에 대해 질문받고 "가상자산 자체를 관리할 시스템이 마련돼야 관련 시장이 열릴 수 있다"며 "하반기 가상자산 관련 제도를 마련하면서 공론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하되 자본시장법상 제약이 있기 때문에 입법 가능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 발언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 공약을 내건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일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 리서치팀이 발간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톺아보기: 규제와 혁신 사이' 보고서는 국내 정치권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국내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가상자산 산업의 본격적인 제도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 관련 금융상품을 규율해야 한다면 허용하기 가장 쉬운 것이 (해외 현물 ETF) 중개, 다음이 선물 ETF 거래, 가장 까다로운 것이 현물 ETF 거래일 것"이라며 "비트코인 선물 ETF 상품화 자체는 국내 자산운용사로서 어려운 일이 아니고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을 현행법상 '특별자산'으로 인정한다는 유권 해석만 한다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제4차 비트코인 '반감기'도 올해 4월 총선과 인접한 시기로 예정돼 있다. 반감기는 비트코인 거래가 체결된 기록을 생성한 '채굴' 성공 시 보상이 기존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점이다. 반감기를 거칠 때마다 비트코인 시세가 급등했다. 암호화폐 투자 정보 사이트 '비트코인센서스'의 예측에 따르면 현재 블록 생성 소요시간 기준으로는 4월 16일께, 전체 평균 블록 생성 소요시간 기준으로는 4월 20일께 반감기가 온다.
아주경제=임민철 기자 imc@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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