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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앞길 막겠다" 청년 갑질 기업 근로감독... 14억 임금체불도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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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청년 많은 IT·플랫폼 60곳 기획감독
근로시간 관리 손 놓고 101번 '불법 야근'도
'근로감독 시 휴식권 서류 점검 의무화' 개정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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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연구기관 A사의 연구센터장은 무기계약직인 청년 직원에 대해 "마음만 먹으면 네가 회사 다니는 거 힘들게 할 수 있다", "이 바닥이 그리 넓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네 앞길 막을 수 있다"는 식의 폭언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B사는 신규 게임 공개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밥 먹듯 야근을 시켜 32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했다. 또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아예 관리하지 않으면서, 101회에 걸쳐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한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C사도 있었다.

청년들이 선호하고 많이 근무하는 정보기술(IT)·플랫폼·게임 등 정보통신 기업과 전문 연구개발 업종을 중심으로 한 정부 근로감독 결과, 총 14억 원대 임금체불을 포함해 연장근로 한도 위반,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등 노동관계법 위반사항 238건이 적발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60개 회사를 대상으로 집중 기획감독을 실시해 △46개사에서 14억2,300여만 원(3,162명분) 임금체불 △12개사에서 근로시간 관리 소홀 등 장시간 근로 △7개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을 적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서면 근로조건 명시 의무 위반(38개사), 임금명세서 필수기재 사항 누락(27개사) 등 기초적인 노동 질서를 위반한 경우도 다수 적발됐다. 고용부는 "고의·상습적으로 법을 위반한 기업 한 곳은 즉시 사법처리했고, 다른 기업들은 시정조치 후 이행 상황을 재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금체불은 주로 '일 시킨 만큼 수당 안 주는 문제'에서 비롯했다. 실제로는 더 일했는데 연장근로 법정한도인 '주 12시간'까지만 수당을 줘서 7,400만 원을 아낀 모바일 콘텐츠 개발기업, 보상 휴가를 법정 기준보다 적게 주는 방식으로 2억4,000만 원을 아낀 전자상거래 기업 등이 대표 사례다. 이런 방식으로 46개 기업이 체불한 인건비는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7억6,000만 원, 연차유급휴가 미사용 수당 4억9,000만 원, 퇴직금 등 기타 1억5,000만 원이었다.

임금체불과 맞물려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위반한 경우도 12개사에서 적발됐다. 주로 근로시간 자체를 관리하지 않거나 사내 시스템에 법정한도까지만 입력할 수 있도록 막아 직원들에게 '공짜 노동'을 시킨 경우였다.

'직장 갑질'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부하 직원에게 "미친 ×× 아니냐" 등 욕설과 폭언을 한 공공연구기관 상급자, 여성 직원에게 "짧은 치마 입지 말랬지, 약속 있어?", "화장했네, 예뻐 보인다" 등 언어적 성희롱을 한 게임 개발 기업 팀장, 사무실 내에서 상습적으로 고성을 지르고 대체 휴무 사용을 일방적으로 불허한 미디어 플랫폼 기업 관리자 등이다.

정부는 이번 감독 결과 청년 노동자 휴식권에 대한 침해 사례가 여럿 확인된 만큼 IT·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청년 휴식권 보호'를 위한 현장 예방점검의 날을 오는 18~29일 2주 동안 전국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IT, 게임, 영상·방송 콘텐츠 제작 등 청년 노동자가 많은 30인 미만 기업 4,500여 곳을 대상으로 기초 노동 질서와 휴식권 보장 등을 현장 계도하는 것이다. 또 보다 적극적인 휴식권 보호를 위해 근로감독 시 휴식권 관련 증빙 서류 점검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근로감독권 집무규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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