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동작구의 흑석역 인근에서 만난 학부모 이모(45)씨는 다가오는 4·10 총선에서 교육 공약을 보고 후보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동작구에서 17년째 살아온 이씨는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이씨는 “관내 고등학교가 부족해서 큰 딸은 용산구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며 “교통도 좋고, 한강을 낀 환경도 만족하는데 교육이 가장 걸림돌”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 동작에 출마한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서울 동작구 남성역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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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을은 최근 6번의 총선에서 여야가 3번씩 승패를 주고받아 수도권 ‘바람’의 풍향계라는 평가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내 생활’을 앞다퉈 이야기했다. 이런 표심을 읽은 듯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는 정치색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지역 일꾼론’으로 바닥을 샅샅이 훑는 지상전을 선택했다. 선거 명함에는 ‘동작에서 태어난 동작사람’, 빨간색 점퍼 등에는 ‘진심이 이깁니다’는 문구를 새겼다.
나 후보는 지난 9일 오후 흑석동의 원불교소태산기념관의 한 카페를 찾아 학부모 5명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했다. 나 후보는 자리에 앉자마자 1호 교육 공약을 술술 읊으며 “고등학교 부족 문제는 지역과 상관없이 서울 전역의 고등학교를 지원해 갈 수 있는 비율을 50%까지 확대해서 해결해보겠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모(41)씨는 “남편이 정치적인 자리 오는 걸 싫어해서 몰래 왔다”면서도 “통학로 개선과 학원가 조성 등 현안을 꼭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루에 7~9개의 일정을 소화하는 나 후보는 등교 인사, 학부모 간담회, 입학식 등 학부모를 만날 수 있는 일정을 하루에 최소 1개 이상 잡고 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어디서나 나 후보를 만나니 딸이 ‘나길동’(나경원+홍길동)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9일 나 후보가 남성사계시장에서 거리 인사를 할 때도 “지난번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인사했다”, “이수역 인사 때 봤다”며 먼저 아는 체하는 주민도 있었다. 만둣가게를 운영하는 이두배(76)씨는 “나경원은 정말 열심히 지역을 닦은 우리 동네 사람이다. 내가 보증한다”고 했다. 나 후보는 “낙선 후 힘들 때 위로해주던 삼겹살집 사장님 같은 단골 가게가 선거 운동에 큰 힘이 된다”며 “진영논리에 빠져 극단으로 치달은 정치를 회복을 위해서라도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당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류삼영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0일 서울 동작구 성진교회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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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동작을 선거에 뒤늦게 뛰어든 류삼영 민주당 후보는 먼저 정권 심판을 전면에 내세웠다. 5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류 후보는 명함에 ‘검찰 잡는 경찰’ 슬로건과 ‘당대표 정치테러 대책위원’ 이력을 적어 정체성을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고자 출마 선언 후 3일 만에 친민주당 성향의 유튜브인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새날’에 등 출연하면서 ‘공중전’에 나서고 있다.
9일 저녁 이수역 먹자골목 거리유세에 나선 류 후보는 20대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일일이 식당을 찾은 류 후보는 연신 민주당을 상징하는 엄지 척을 하면서 식사 중인 청년과 사진을 찍었다. 류 후보를 만난 지역 주민들은 류 후보에게 “처음 본다”, “누구시냐”며 어색해하기도 했지만 이내 “이번에 꼭 정권 심판해야 한다”며 응원을 보냈다. 사당2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28)씨는 “물가가 너무 올랐는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물보다는 정당을 보고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류 후보 측은 “류 후보가 동작에선 정치 신인이지만 정권 심판론으로 호남 출향민의 지지세를 결집하면 해볼 만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류 후보의 저녁 유세 현장에는 친야 성향 유튜버 7명이 약 2시간가량 동행하며 실시간으로 “정의의 사도 류삼영”이라며 류 후보를 응원했다. 류 후보는 “일단은 정권 심판이 중요하다”며 “지역 공약으로는 흑석동 신설 고등학교의 조속한 개교와 동작대로 교통 체증 해소, 재개발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을 두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
■ ‘강남4구’ 꿈꾸는 동작...최대 변수는 재개발된 ‘흑석동 표심’
‘흑석동 표심’이 최근 서울 동작을 선거의 변수로 작용했다.
흑석동은 4년 전 총선에서도 동작구 전체 표심과의 격차가 컸다. 당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동작을 전체에서 나경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7.2% 포인트(8381표) 차이로 꺾었지만, 7개 동 가운데 흑석동과 사당3동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특히 흑석동에서는 나 후보가 이 후보를 1344표(7.2%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당첨 시 5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이 예상된 흑석자이 2가구에 93만여 명이 몰려 단일 아파트 단지로는 역대 최다 신청 건수를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 동작구 흑석자이 단지의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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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대 총선만 해도 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가 얻은 총득표수가 새누리당 후보에 572표 앞섰다. 그러나 2018년 12월 1073세대의 아크로리버하임 입주가 시작되면서 흑석동 표심이 보수 우위로 기울었다는 평가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선 흑석동에서만 윤석열 대통령이 1만1061표(59.0%)를 얻어 이재명 후보(6931표·36.9%)를 크게 앞섰다.
흑석동엔 지난해 2월 흑석3구역 재개발 완료로 1772세대의 흑석자이가 새로 들어섰다. 이에 따라 흑석동 인구 숫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3만13명으로 1년 만에 2116명이 늘었다.
다만 신규 입주 아파트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흑석자이에 사는 박정기(59)씨는 “원주민은 분양권을 팔고 많이 떠났다”며 “노인부터 젊은 부부까지 구성원이 다양해 입주민의 정치성향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후보들도 흑석동 민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남·서초·송파 다음이라는 ‘강남4구’에 대한 지역 주민의 열망이 적지 않은 만큼 교육과 교통 환경 개선, 부동산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는 “한강을 끼고 있는 흑석동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한강수변문화복합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류삼영 민주당 후보는 “경찰 재직 경험을 살려 교통 체증과 안전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창훈·이가람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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