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시위와 파업

[필동정담] 의사 파업과 '하얀거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TV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는 의사다. 돈도 잘 벌고 환자를 살리는 직업적 매력 때문이다. 의대 인기가 높아진 데는 병원 드라마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최애(最愛) 드라마를 꼽자면 2007년 방영된 '하얀거탑'이다. 거기에는 지금 시끄러운 의료계 문제들이 이미 등장했다. 인턴과 레지던트 같은 전공의는 늘 바쁘게 뛰어다녔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호출기를 찬 채 쪽잠을 잤다. 당시엔 몰랐지만 그들은 초과 근무와 박봉에 시달렸다. 반면 전문의·교수가 된 고참 의사들 삶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병원 지방 분원에는 좌천된 의사가 내려갈 만큼 지방 기피는 그때도 심했다.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이 대학병원 외과 과장이 되려고 각종 권모술수를 부리는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출신(차인표 분)이 대학 텃새에 밀려 실력 발휘를 못 하고 떠나기도 했다. 특정 의대 순혈주의와 배타성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같이한 터라 의사들끼리 의료사고를 덮기 위한 공모도 일어났다. 병원 내 권력 암투와 의사들 간 위계질서가 강하다는 점을 그때 처음 알았다.

병원 내 집단 압력을 감안하면 지금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들 휴학도 그들 각자가 스스로 택한 일은 아닐 것이다. 파업 종료 후 왕따가 될지 모를 두려움으로 인해 독자적인 행동은 애당초 어렵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파업과 휴학 반대 목소리가 등장했다. 글쓴이는 "극한 대립 속에서 각자 사정과 의견이 설 자리를 잃었다"며 의료계에 만연한 집단주의를 지적했다.

현재 정부와 의료계 모두 기존 입장을 고수하다 보니 언제 어떻게 결말이 날지 예측이 안 된다. '하얀거탑'에는 권력 다툼에 휘둘리지 않고 연구만 하는 병리학 교수와 환자를 내 몸처럼 돌보는 내과 의사가 나온다. 현실 속 병원에도 이들처럼 소명 의식이 강한 의사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분들도 면허 정지를 앞둔 제자들을 구하러 파업 대오에 나설 기세다. 드라마에서 본 실력과 양심을 갖춘 훌륭한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

[김병호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