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혼란]
증원 발표 한달… 의료계 원로들 조언
“2000명 증원 근거 명확히 제시해야
어느 한쪽이 백기드는 형태는 안돼”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를 발표한 지 6일로 한 달이 됐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고, 정부는 의사면허 정지 절차를 시작했다. 첨예한 의정(醫政) 갈등의 해법을 의료계 원로인 이종철 전 삼성서울병원장, 정남식 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한희철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으로부터 들었다.
● “의사, 특권의식에 갇히면 공감 못 얻어”
원로들은 전공의의 단체행동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 전 원장은 “의사는 환자를 떠나 살 수 없다. 국민이 있어야 의사도 있다”며 “전임의(펠로)까지 이탈한 3월부터는 기존 의료진도 버티기 힘들다. 일단 하루빨리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이건희 주치의’로 유명했던 이 전 원장은 주요 보직을 마친 후 고향인 창원보건소장으로 내려가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세브란스병원장을 지낸 정 전 원장 역시 “(현장에서 자주 접했던) 전공의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응급실이나 중환자 등 필수의료 현장은 지켜주길 바란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정부에 맞서는 의사들의 투쟁 방식에 대해서도 뼈 있는 지적을 이어갔다.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를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단체 관계자의 TV 토론 발언 등을 놓고 한 이사장은 “일부의 고소득이나 거친 표현이 강조되며 의사들이 특권의식 집단으로 비치고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했다”며 “의사 양성 과정 등 국민께 정작 알려야 하는 내용은 뒤로 밀렸다”고 아쉬워했다.
● “MZ세대 의사 특성 이해해야”
이들은 정부에 대해선 ‘2000명 증원’의 근거를 더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와의 의사 수 비교 등으로는 대규모 증원을 받아들일 의료인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공공의료 비중이 더 큰 유럽과 단순 의사 수를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나라마다 의료 전달 체계와 접근성이 다른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장은 “고령화로 의료 서비스 이용이 늘어나는 것은 맞다”면서도 “질병 치료를 위한 의사가 더 필요한지 돌봄 인력이 더 필요한지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젊은 의사들의 특성을 이해해야 갈등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한 이사장은 “우리 세대는 휴학이나 수련 중단은 감히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지금 20대들은 다르다”며 “정부가 압박해도 MZ(밀레니얼+Z)세대는 ‘1년쯤 쉬어가자’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정 전 원장도 “정부가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놔야 하는데 증원을 통한 낙수효과만 기대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원로들은 이번 사태가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드는 형태로 끝나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전 원장은 “의사 수를 늘리는 문제는 사칙연산처럼 답이 명확한 문제가 아니다. 개선이 더딘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개선 문제, 젊은 의사들의 인식 변화 등을 두루 고민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의대 학장 등을 지낸 한 이사장은 “정부는 교수를 늘려 의대 교육 부실을 막겠다고 하지만 해부학, 생리학, 법의학 등 기초의학 분야는 지금도 교수가 부족하다. 증원을 한다면 의대 교육 환경과 연구 시스템을 개선하는 문제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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