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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구호품 받으려던 군중에 발포" 선 넘은 이스라엘… 휴전 협상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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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트럭 몰려든 주민 최소 112명 사망
하마스 "무차별 총격" vs 이 "경고 사격"
국제사회, 이스라엘 규탄... "정당화 불가"
NYT "이, 편집본 영상 공개... 은폐 의심"
한국일보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지난달 29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 있는 나불시 교차로를 무인기(드론)로 촬영한 영상 중 일부. 이스라엘은 IDF가 인도주의적 물자 보급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대기했고, 폭력·압사 등 위험을 방지하고자 경고 사격을 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영상을 공개했다. IDF 엑스 계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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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봉쇄로 굶주린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섬멸에만 몰두하는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함이 결국 '초대형 참변'을 낳고 말았다. 구호품을 받으려던 팔레스타인인이 밀집해 있는 곳을 향해 이스라엘군이 총격을 가한 탓에,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최소 112명이 총에 맞거나 압사 등으로 숨진 것이다. 부상자도 760명 이상 발생했다.

이 같은 참사를 초래한 원인과 경위 등 사실관계는 다소 불분명하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군의 조준 사격'을 문제 삼는 반면, 이스라엘은 "구호 트럭으로 군중 수천 명이 몰려들어 위험이 커졌기에 불가피하게 경고 사격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향한 총격은 명백한 터라,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당장 미국 이집트 카타르 중재로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의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굶주린 가자 주민들 향해 총 겨눈 이스라엘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 중동권 알자지라방송 등을 종합하면, 전날 오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 있는 '나불시 교차로'에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이 진입하자 주민 수천 명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가자 북부 지역은 지난 1월 말부터 식량 전달이 사실상 끊겼고, 다수가 가축 사료로 연명할 정도로 극심한 인도주의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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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 있는 나불시 교차로에서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총을 쏠 당시의 상황이 담긴 영상을 중동권 알자지라방송이 입수해 공개했다. 구호품을 보급받기 위해 모여 있던 주민들이 총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대피하는 모습이 찍혀 있다. 알자지라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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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상황에 대한 하마스·이스라엘의 설명은 판이하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방위군(IDF)이 구호품을 기다리는 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아부 나헬은 "구호품 전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배급처로 나갔다"며 "사람들이 트럭에서 밀가루, 통조림 등을 꺼내자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도망갔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당시 촬영된 듯한 영상에도 총소리에 놀라 급히 대피하는 주민들 모습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은 총격 사실을 인정하되, "더 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다니엘 하가리 IDF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2월 29일 오전 4시 40분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이 해당 구역으로 진입했고, 4시 45분부터 군중이 트럭을 에워쌌으며, 군중이 밀쳐지고 밟혔다"고 주장했다. 이어 "IDF는 구호 물품 배분을 지원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총격보다는 트럭에 깔리거나 압사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이다.

IDF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항공 촬영 영상도 공개했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는 해당 영상에 오디오가 제거돼 있고 임의로 편집한 흔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중요한 순간을 은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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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방위군(IDF)이 1일 공개한 영상에서 다니엘 하가리 IDF 수석대변인이 전날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나불시 교차로'에서 발생한 가자 주민 총격 사건에 대해 영어로 브리핑하고 있다. 그는 거듭 말하겠다며 IDF가 인도주의적 지원을 돕고자 그곳에 있었을 뿐 구호 차량, 주민들을 향해 총을 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IDF 엑스 계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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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 불가" 잇단 규탄... 휴전 협상에도 악영향


국제사회는 IDF가 구호 물품을 받으려던 인파를 향해 직접 총격을 가했다는 사실 자체에 경악했다. 유엔은 규탄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도 즉각 소집했다.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프랑스 외무부), "용납할 수 없는 사건"(스페인 외무부) 등 개별국의 비판도 잇따랐다. 이스라엘이 지난 1월 '가자지구 민간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보장하라'고 했던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명령을 위배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이번 사건은 최근 발생한 단일 사건 중 최다 희생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휴전 협상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를 인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상반되는 두 이야기가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휴전 협상이) 월요일(4일)까지 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이번 주 내 협상 타결을 기대한다"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사실상 철회한 셈이다. 다만 그는 "나는 (휴전안 타결에) 희망적"이라며 기대감을 완전히 접진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수행' 의지를 내비쳤다. 이스라엘군의 발포 사태에 대해선 별도 언급 없이 그는 "(휴전) 협상 성과를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며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공격 의사만 재확인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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