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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3 (토)

“105년 전 외증조부가 목숨 바친 자유·독립 가치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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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송 지사 외증손자 유엔사 강형욱 소령

외증조부 일제 맞서 만세시위 주도

서대문형무소 갇혀 고문 받다 순국

조부도 6·25 일어나자 바로 참전

13살때 캐나다 이민… 군인길 걸어

2022년 유엔사 근무 지원 모국행

“외증조부의 희생으로 얻어낸 독립과 자유를 유엔사의 일원으로서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캐나다 해군 소속으로 유엔군사령부에서 근무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장교 강형욱 소령은 29일 제105주년 3·1절을 앞두고 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강 소령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월1일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면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던 박의송 애국지사의 외증손자다. 그의 친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인 강병찬 육군 중사다. 강 소령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은 것은 딱 두 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며 “한 분은 105년 전, 한 분은 70여년 전에 목숨을 바쳐 지켰던 나라를 저도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유엔사에서 근무 중인 캐나다 해군 강형욱 소령이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 자신의 외증조부이자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박의송 애국지사의 사진(오른쪽) 곁에서 추모를 하고 있다. 유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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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에 아버지와 함께 캐나다에 이민을 간 강 소령은 이후 캐나다 왕립사관학교(RMC)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군함 건조 사업부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주미 캐나다대사관에서 근무했고, 2022년부터는 유엔사 근무를 지원해 모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군인이 된 이유 중에는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외증조부와 조부의 정신을 이어받고 싶었던 것도 있다.

박 지사는 3·1운동 당시 수백명의 시위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연설을 했고, 시위행진을 하다 체포됐다.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이 좋은 기회에 자유 독립의 희망에 대해서 세계 공법주의에 의해서 동정을 표시하는 것이 하등의 죄 될 것이 아니므로 무죄 백방하길 바란다”며 상고했다. 극심한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임했던 것이다. 빈사 상태에 빠졌던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현재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도 박 지사의 사진과 기록이 전시돼 있다. 강 소령은 “대학생 때 이모들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가서 외증조할아버지를 처음 뵈었다”며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배운 유관순 열사 옆에 나란히 서 계신 모습을 보고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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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엔사 파견으로 한국에 왔을 때도 자녀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그는 “오늘의 자유와 독립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이분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갖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듯 대한민국은 3·1운동에서 출발한 나라다. 강 소령은 “3·1운동으로 자유와 독립을 만방에 알렸다”며 “유엔사의 역할도 한반도의 평화와 자유, 민주의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는 것으로서 맥락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강 소령은 이번 3·1절에는 자택 창문에 태극기와 캐나다 국기와 유엔사 깃발을 함께 걸어둘 계획이다. 그는 “제가 태어났던 한국에 돌아와 3·1절을 맞이하는 게 교민으로서 너무 뜻깊다”며 “캐나다군과 유엔사의 관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도 우리 가족과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돼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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