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미쉐린 부산 빕구르망 선정 식당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식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가 지난달 22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4’ 편을 발표했다. 2017년 서울편을 처음 발간한 뒤 7년 만에 한국 2대 도시(인구 기준)로 영역을 확장했다.
김주원 기자 |
부산은 모두 43개 식당이 꼽혔다. 대중의 관심은 고급 레스토랑보다 ‘빕구르망(4만5000원 이하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으로 쏠렸다. 빕구르망에 선정된 15개 식당의 면면이 드러나자 의외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부산 사람도 잘 모르는 식당이 수두룩했다. 돼지국밥집 2곳, 냉면집 2곳 빼고는 모두 외국 음식 전문점이었다. 밀면, 대구탕, 꼼장어(먹장어) 구이 등 관광객이 부산에서 꼭 찾는 음식은 없었다. 대신 일본 식당이 5곳 꼽혔고, 태국과 대만 식당도 포함됐다.
미쉐린은 전 세계 공통 기준만 밝힐 뿐, 의아한 선택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15개 식당 중 7곳을 가봤다. 맛은 둘째 치고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식당이 깔끔했고, MZ세대가 ‘감성 맛집’이라고 할 만한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평양냉면 같은 돼지국밥
‘합천국밥집’ 국밥은 유난히 국물이 맑다. 수육에는 비싼 부위인 항정살도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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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국밥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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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소울푸드’는 누가 뭐래도 돼지국밥이다. 부산에만 돼지국밥 파는 식당이 600개가 넘는다(2019년 한국외식업중앙회). 수많은 돼지국밥집 중에서 미쉐린은 남구 용호동의 ‘합천국밥집⑫’과 남천동의 ‘안목’을 빕구르망으로 선정했다. 25년에 걸쳐 2대를 이어온 ‘합천국밥집’은 말갛게 끓이는 돼지국밥으로 정평이 났다. 천병철(65) 사장은 “육수는 오래 끓이는 것보다 어떤 부위를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합천국밥집은 잡뼈 없이 돼지 앞다리뼈로만 육수를 낸다. 국물만 보면 평양냉면에 가까울 만큼 빛깔이 맑다.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꺼리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만한 맛이다. 심심한 국물과 달리 멍게 넣은 무김치와 부추겉절이 등 밑반찬은 간간한 편이어서 궁합이 좋다. 수육에는 앞다릿살·삼겹살 외에 상대적으로 비싼 부위인 항정살도 올라왔다. 천 사장은 “식재료는 가장 좋은 국산만 고집한다”며 “돼지국밥은 정성과 재료를 아끼면 금방 표가 난다”고 말했다.
밀면 포기하고 냉면밀면 포기하고 냉면
‘부다면옥’의 물냉면은 소고기향 진한 맑은 육수와 고소한 순메밀면의 맛이 조화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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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대중 음식이라면 역시 밀면이다. 그러나 미쉐린은 밀면이 아닌 평양냉면집 두 곳을 선택했다. 부산에서 냉면을 떠올리긴 쉽지 않지만, 전국의 냉면 마니아가 순례지처럼 찾는 곳도 있다. 2021년 3월 해운대전통시장 초입에 자리 잡은 ‘부다면옥⑮’이다. 식당 역사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부다갈비로 출발했고, 2017년 부다밀면으로 상호를 바꿔 밀면과 냉면을 팔다가 3년 전 냉면집으로 탈바꿈했다. 이수학(52) 사장도 냉면을 오랫동안 공부했고, 이북 냉면 기술을 보유한 박태희 셰프를 영입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 사장은 “냉면 애호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일부러 2층에 가게를 냈다”며 “양념장을 찾거나 맹물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맛으로 설득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력은 짧지만, 냉면 맛이 얕지는 않다. 진한 한우 육향과 순메밀면의 고소한 맛이 조화롭다. 식초와 겨자, 따로 내준 절임무와 오이를 안 넣고 냉면 고유의 맛을 음미하는 재미가 컸다.
짜장면 아니라 우육면
미쉐린이 선택한 대만 음식. ‘뉴러우멘관즈’의 우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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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이 선택한 대만 음식. ‘바오하우스’의 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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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쟁쟁한 중식당도 많다. 그러나 미쉐린은 짜장면·탕수육을 파는 중화요릿집이 아니라 대만 음식점 2곳을 선택했다. 남천동 ‘뉴러우멘관즈(牛肉麵館子)⑪’는 이름 그대로 우육면 전문 식당이다. 이곳을 포함해 부산에 중식당 5곳을 운영 중인 사공승열(42) 사장이 2021년 개업했다. 분위기가 타이베이의 어느 식당을 옮겨온 것 같다. 간판과 메뉴 모두 한자로 쓰여 있고, TV에서는 대만 방송이 나온다. 우육면을 먹어봤다. 탱글탱글한 면발과 입에서 살살 녹는 소고기, 절인 갓의 조합이 좋다. 사공 사장은 “부산 사람의 입맛을 고려해 국물에 매운맛을 더했다”고 말했다. 대만식 돼지갈비 돈가스와 새우 물만두는 곁들임 메뉴로 인기다. 카페 거리로 유명한 전포동의 ‘바오하우스④’도 대만 음식 전문점이다. 우육면과 마파두부도 유명하지만, 대만식 찐빵 ‘꽈바오’ 맛집으로 통한다. 대표 메뉴인 클래식 바오를 한입 베어 먹었다. 삼겹살과 할라페뇨, 고수 그리고 찐빵의 조화가 재밌어서 웃음이 나왔다.
광안시장 옆 방콕 분위기 선술집
태국 분위기 물씬 풍기는 ‘피리피리’의 대표 메뉴인 푸팟퐁커리와 팟타이, 똠얌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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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로 따지면 광안종합시장 옆에 자리한 ‘피리피리⑦’도 뒤지지 않는다. 큼직한 태국어 간판, 내부를 가득 채운 태국 사진과 식재료, 현지식에 가까운 맛이 방콕 선술집 그대로다. 영업도 저녁(오후 5시 30분~자정)에만 한다. 피리피리는 역사가 짧다. 2022년 5월 개업했다. 서울의 여느 타이 레스토랑처럼 태국인 주방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미쉐린의 선택을 받았다. 똠얌꿍과 팟타이, 피리피리의 대표 메뉴인 푸팟퐁커리를 먹어봤다. 백영수(36) 사장이 가장 자신 있는 메뉴라고 내놓은 푸팟퐁커리는 일단 푸짐했다. 껍데기가 연한 태국산 게가 아니라 꽃게를 쓰고 새우까지 넉넉히 들어 있었다. 매콤한 레드 커리와 궁합이 좋아서 밥도둑, 맥주 도둑이라 할 만했다. 똠얌꿍은 향신료 맛이 진해 태국 현지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백 사장은 “레몬그라스, 갈랑가(태국 생강), 샬롯(미니 양파) 등 태국 요리의 기본이 되는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살살 녹는 민물장어
‘슌사이 쿠보’의 나고야식 민물장어 덮밥. 장어를 뜨거운 김에 찐 뒤 숯불에 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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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사이 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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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부산은 일본과 왕래가 잦았다. 그 까닭에 부산 구석구석에 일본의 맛이 스며 들어있다. 2018년 개업한 북구 화명동의 ‘슌사이 쿠보①’는 나고야 향토 음식인 ‘히츠마 부시(민물장어 덮밥)’로 이름난 가게다. 소금구이나 고추장 양념구이가 일반적인 한국식 민물장어와 달리 슌사이 쿠보는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비늘을 제거한 민물장어를 뜨거운 김에 찐 뒤 5년 이상 숙성한 간장 소스를 겹겹이 발라가며 숯불에 굽는다. 흙내와 비린내를 없애고 식감과 불향을 살리는 비법이다. 이재욱(40) 오너 셰프는 “장어가 밥알과 따로 놀지 않고 동일한 식감을 내도록 조리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사카의 미쉐린 1스타 식당 ‘스시 도코로 쿠로스기’를 비롯해 일본에서 10년의 요리 경력을 쌓았다. 소금과 누룩 등에 2주 이상 발효한 채소 절임, 계란찜 같은 밑반찬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고등어 초절임(시메사바)도 별미다.
3대째 이어온 일본 라멘
해운대에 자리한 ‘나가하마 만게츠’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출발한 유서 깊은 라멘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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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하마 만게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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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하마 만게츠⑬’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1963년부터 3대째 이어온 라멘 가게의 첫 한국 지점이다. 2018년 해운대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소박한 야타이(포장마차) 컨셉트이지만, 부산에서는 오픈 키친과 ‘ㄷ’자 바 테이블을 갖춘 레스토랑으로 규모를 키웠다. 일본 라멘은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국물 내는 방법에 따라 다르고, 라멘에 들어가는 고명과 면의 종류에 따라 또 다르다. 나가하마 만게츠는 돼지 사골 육수에 차슈(구운 돼지고기)와 얇은 면을 곁들이는 ‘하카타 스타일’을 고수한다. 안병도 매니저는 “36시간 우린 육수에 50년 비법 소스를 곁들여 맛을 낸다”고 말했다. 메뉴는 라멘과 나가하마라멘, 야끼교자(일본식 군만두)가 전부다. 면은 삶는 시간(6, 13, 22, 33초)을 고를 수 있다. 꼬들꼬들한 식감을 선호한다면 13초가 적당하다. 조리 방식은 현지 그대로지만, 매운 다진 양념 같은 ‘부산 스타일’도 가미했다. 라멘에 딸려 나오는 크림치즈 디저트도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다. 1000원짜리 공깃밥에도 차슈가 올라간다.
부산=글·사진 최승표·백종현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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