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27 (토)

이제 배 속 아기 성별 언제든 알 수 있다... 헌재 "고지 금지 '위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의료법 20조2항 위헌 결정, 즉시 효력
"남아선호 사상 쇠퇴" 사회상 등 반영
"고지 제한 폐지는 위험" 반대 의견도
한국일보

게티이미지 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닮았네요." "파란색 옷을 준비하시면 되겠어요."

이제 산부인과에서 임신 32주 전 태아의 성별을 두고 의료진과 예비 부모가 에둘러 묻고 답해야 했던 이런 풍경이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28일 임신 32주 전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현행 의료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쇠퇴한 사회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단순 위헌 결정으로 즉시 효력이 생겨 앞으로는 언제든 태아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다.

다수 재판관 "성별 고지, 낙태 전 단계 아냐"

한국일보

이종석(뒷줄 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헌재는 이날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6(단순 위헌) 대 3(헌법불합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임신 32주 이전에 의료인이 태아나 임신부를 진찰 또는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性)을 임신부와 가족 등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 다수 재판관(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낙태 전 단계로 취급해 제한하는 건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자리 잡은 양성평등의식 △확연히 쇠퇴한 남아선호 사상 △정상범위 내의 출생성비 등이 근거가 됐다.

이 규정은 남아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던 1980년대, 미리 태아의 성별을 확인해 여자 아이라면 낙태하는 범죄를 막으려 제정됐다가 2009년 한 차례 개정됐다. 개정 전에는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고지가 금지됐었다. 2008년 헌재가 이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듬해 임신 32주부터 성별을 알려줄 수 있게 바뀌었다. 이후 "개정된 조항도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권과 행복추구권,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임신부 등의 청구로 이날 헌법소원심판이 열렸다.

"태아 성별 아는 것, 부모 권리"

한국일보

의료법 20조 2항은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알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임신 12주면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다. 게티이미지 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수의 재판관은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모든 태아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고 지적했다. 의료 현장에서 임신 32주 전 사실상 성별 고지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도 감안했다. 재판관들은 "의료인으로부터 태아의 성별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지만 이 조항 위반으로 검찰 고발·송치 및 기소된 건수는 10년간 한 건도 없다"면서 "(해당 조항이) 사문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도 태아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낫다는 반대 의견(이종석 소장, 이은애·김형두 재판관)도 있었다.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이유다. 낙태죄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현재 성별 고지 제한마저 사라지면 성별 선호에 따른 낙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소장 등은 "단순 위헌 결정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을 대안 없이 일거에 폐지하는 결과가 돼 타당하지 않다"면서 "태아의 성별 고지 제한의 필요성은 계속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선 헌재의 이날 결정을 반기는 입장이 나왔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32주 이후부터 허용은 사실상 태아 성감별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다름 없고, 부모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정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