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서 스스로 성장 멈추고
신경망 변화시켜 수명 늘리며 버텨
현미경으로 본 예쁜꼬마선충(긴 막대 모양).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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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과일이나 낙엽 더미에서 유기물을 먹고사는 예쁜꼬마선충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뇌 신경망을 스스로 진화시키면서 수명을 늘려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밝혀냈다.
27일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김진섭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 신경망 진화의 비밀을 담은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300여 개의 신경세포(뉴런)를 가진 예쁜꼬마선충은 인류가 성체의 완전한 '커넥톰'을 그려낸 첫 생물이다. 커넥톰은 신경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신경세포의 연결을 나타낸 일종의 지도를 말한다. 커넥톰 완성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은 예쁜꼬마선충의 성별이나 성장 단계에 따른 커넥톰을 비교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번 연구에선 '다우어(dauer)' 시기인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을 분석했다. 알에서 태어나는 예쁜꼬마선충은 보통 유충 시기(L1~4)를 거쳐 성체가 된다. 그런데 고온이나 굶주림, 높은 개체 밀도처럼 열악한 환경에 처하면 L2 유충은 L3이 아닌, 대안적 발생 단계인 다우어 시기로 진입한다. 다우어 시기엔 생존을 위해 몸을 가늘게 만들어 활동량을 줄이고, 외부 환경에 저항하기 위해 피부층을 두껍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 최대 6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이후 성장에 적합한 환경이 되면 다시 자라 성체가 된다.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은 평균 3주다.
서울대와 성균관대 연구진이 다우어 시기 예쁜꼬마선충의 신경망 지도(커넥톰)를 연구한 과정을 나타낸 모식도. 서울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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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다우어 시기인 예쁜꼬마선충의 세포막을 염색한 채 굳혀 수백 장으로 자른 뒤,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했다. 여기에 AI를 적용해 어떤 신경세포가 어떤 부분과 연결돼 있는지를 파악하고, 정상 발달 단계의 신경계와 비교했다. 그 결과 다우어는 시냅스(신경세포들 사이에 신호가 오가는 틈) 수나 신경망 특성 등이 유충보다 성체에 더 가까웠고, 다른 발생 단계보다 신경세포의 대규모 구조적 변화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또 예쁜꼬마선충이 몸을 흔들어 다른 동물의 등에 올라타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독특한 행동인 '닉테이션'에 관여하는 신경회로도 찾아냈다. 몸길이 1㎜ 정도에 불과한 작은 벌레가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유한 신경망을 발달시키며 진화해왔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준호 교수는 "다우어 시기는 예쁜꼬마선충의 사춘기로 볼 수 있다"며 "사람도 사춘기 때와 성인이 됐을 때의 사고방식이 다르듯, 같은 개체지만 성장을 하면서 뇌가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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