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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슈 정치권 사퇴와 제명

[단독]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 일괄 사퇴…“학문의 자유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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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억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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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가 발행하는 전문 학술지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들이 일괄 사퇴했다. 발행처인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일방적으로 해산된 데 반발해서다.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서 시작된 공세와 기념사업회 측의 학문의 자유 침해 위협도 작용했다.

2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 11명 전원은 전날 기념사업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02년 창간된 기억과 전망은 한국연구재단 등재된 학술지(KCI)로,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학술 연구를 소개해 왔다. 지난해 겨울호(통권 49호)까지 발행됐다.

편집위원 전원 사퇴의 가장 큰 이유는 기념사업회가 기억과 전망 발행 기관인 ‘한국민주주의연구소’를 지난달 1일 해산한 것이다. 편집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

편집위원 집단 사퇴의 결정타는 이재오 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답변이었다. 편집위원들은 지난달 26일 이 이사장 앞으로 보낸 질의서에서 ‘학문의 자유 원칙에 따른 편집자율권 보장’에 관해 물었다. 이 이사장은 지난 5일 답변서에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학문 연구에 대한 자유까지 보장하는 것을 포함하는지에 대해 궁금하여 귀 편집위원회에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고 적었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학문 연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편집위원들은 이 말이 기억과 전망을 향한 겁박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전날 공개한 입장문에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학문 연구’라는 수사적·기만적 표현으로 ‘학문연구의 자유’를 침해하는 폭력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학문의 장에서 이뤄지는 논의는 학문적 비판과 토론 과정에서 학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위원들은 이번 사태가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서 시작된 ‘편향성’ 공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2022년 6월 발행된 기억과 전망에 실린 한 논문이 ‘1989년 임수경씨 방북 사건’을 다룬 방식이 편향적이라고 주장했다.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한국민주주의대상 심사위원회 구성과 수상자 선정이 편향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후 기념사업회에 대한 감사가 진행됐고, 예산이 50%나 삭감됐다. 운영비를 제외한 사업 예산은 8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오창은 편집위원장(중앙대 교수)은 “기억과 전망은 학문적 시스템 안에서 심사를 통과한 다양한 논문을 소개해 학술적 담론장을 형성해 왔다”면서 “하나의 논문만 꼬집어 편향성을 문제 삼으면 우편향 됐다는 지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편향성 공격은 권위 있는 학술지의 게재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폄하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회 예산 삭감과 사업 축소, 민주주의연구소 해산과 편집위원 일괄 사퇴로 인해 기억과 전망이 20년 넘게 쌓아온 학술적 업적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주윤정 편집위원(부산대 교수)는 “기억과 전망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미래 세대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역할하고 확장돼 가는지 논의해왔는데, 지금은 학술지로서 보장받아야 할 학문의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주의연구소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나 민주주의를 국내·외에 알릴 수 있는 유일한 공적 기관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었다”면서 “과거사 관련 재단이 많이 있지만 전문적 학술지는 기억과 전망이 유일했다”라고 평가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사퇴 재고를 요청했지만 편집위원들은 거절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편집위원회를 다시 꾸려 기억과 전망을 계속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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