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거론 일본 경제 착시
정부가 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코리아 디스카운트)을 해소하기 위해 26일 발표하는 ‘기업 밸류 업(가치 상향) 프로그램’을 두고 일본 사례가 롤 모델로 자주 거론된다. 최근 일본 증시가 최고점을 찍는 등 주목받으면서다. 하지만 불붙은 증시와 달리 경제 지표가 차갑게 식는 등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한 만큼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경민 기자 |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 지수는 지난 22일 3만9098로 장을 마감했다. 닛케이 지수가 3만9000선을 넘은 건 이 날이 처음이다.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인 1989년 12월 당시 고점(3만8915)을 34년여 만에 넘겼다. 닛케이 지수는 지난해 연간 28% 상승한 뒤 올해 들어서도 16% 올랐다. 엔화 약세에 따라 수출 기업의 실적이 나아진 데다 최근 중국 증시에서 빠져나온 외국인 자금이 유입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꾸준히 추진한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일본의 실물 경제 성적표는 증시와 달리 여전히 냉골이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15일 일본의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가 0.4%(연율 환산)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3분기(-3.3%)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개인소비와 기업 지출이 모두 부진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달러로 환산한 지난해 일본의 명목 GDP는 4조2100억 달러다. 1968년 이후 55년 만에 독일(4조4600달러)에 밀렸다.
박경민 기자 |
증시가 뛴다고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의 경제 체질이 갑자기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단적으로 일본 증시가 고점을 회복하는 동안 미국의 S&P500 지수는 14배 뛰었다. 일본 경제전문지 다이아몬드는 “일본 경제의 실태가 개선됐기 때문에 주가가 치솟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한 나라의 경제 건전성과 주식 시장 역학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라는 증거가 있다면, 바로 현재의 일본”이라고 분석했다.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는 “증시 개혁도 필요하지만, 경제 체질개선을 통한 실물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며 “기업 구조개선 노력 부진, 급속한 고령화 등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에 빠지게 한 원인을 저성장의 문턱에 선 한국이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국내외 투자자 90여명을 설문한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자기자본이익률(ROE) 8% 등 수치를 단편적인 주가 부양책의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 일회성 또는 일시적 대응으로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강화를 시행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증시 대책이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강화하고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의미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밸류 업 프로그램은 단기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대책이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며 “기업이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성장성과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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