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3 (토)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보이지 않는 힘 [최연진의 IT 프리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중국 인터넷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BP96-xx…'

영상을 크게 볼 수 있는 프로젝터에 들어가는 램프다. 삼성전자의 명기로 꼽히는 'SP-A800, 900' 시리즈와 JVC, 히타치 등 여러 프로젝터가 필립스에서 공급한 이 램프를 사용한다. 램프는 프로젝터의 심장이다. 램프가 없으면 아예 영상을 볼 수 없다. 램프는 수명이 정해져 있어서 일정 시간 사용하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에서 이 램프를 구할 방법이 없다. 원래 7만~8만 원에 팔던 이 램프를 필립스에서 더 이상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지금은 보유 재고가 모두 떨어져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 한동안 서울 용산의 조명상가 등을 발품 팔며 돌아다니면 20만 원대에 어렵게 구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이마저도 없다.

상인들에게 구할 방법을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알리에서 사라"고 한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 이 프로젝터 램프를 중국 인터넷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는 5만 원에 판다. 해당 램프를 제조하는 유일한 공장이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상품은 프로젝터 램프뿐만이 아니다. 드론에 반드시 필요한 모터도 마찬가지다. 국내외 상당수 드론업체들은 중국산 모터를 쓴다. 심지어 미국의 군사용 드론에도 중국산 모터가 들어간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다른 나라들은 드론용 모터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도 중국산 모터에 대해서는 무역 제재를 하지 않는다.

요즘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저가 공세 때문에 국내 상권이 죽는다고 아우성이다. 그 바람에 해당 쇼핑몰이 취급하는 상품에 관세 부과 등 통관 제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상권 보호를 위해 겹치는 상품에 대해서는 이런 조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모든 상품에 적용할 일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프로젝터 램프나 드론 모터처럼 국내에서도 구하기 힘든 상품까지 불똥이 튀면 빈대 잡으려다 집을 태우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프로젝터 램프나 드론 모터는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상품이지만 관련 업체와 소비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부품이다. 한때 공급 부족으로 디젤 자동차 운행에 차질을 빚었던 요소수와 마찬가지다. 국내 필요한 요소수 공급량의 97%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이처럼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힘은 전 세계 공장 역할을 하는 제조업체와 연결된 공급망에 있다. 이 부분을 국내에서 대체할 수 없다면 미우나 고우나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소비자와 산업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 인터넷 쇼핑몰이 광고성 글을 표시도 하지 않고 내보내는 등 국내 법을 위반한 행위와 판매자 잘못으로 발생한 소비자 피해 구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 행위 등은 적절한 제재가 필요하다. 즉 판매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발생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이 적법하게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와 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무차별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 국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공급망을 막아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인터넷 쇼핑몰이 단순 소비재 판매에 그치는 상점이 아니라 어느새 글로벌 공급망으로 올라선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