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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짧아도 황홀하다… 사막에서 만나는 ‘아이보리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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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라비아반도 왕국 카타르

가성비 탁월한 경유지 여행

밖으로 나가본 건 처음이었다. 도하(Doha)는 사실 거쳐가는 곳이었다. 중동 국가 카타르의 수도, 그러나 유럽 여행의 주요 경유지로 더 자주 언급되는 곳. 이곳 하마드국제공항에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고, 명품 회사 루이비통이 최초의 라운지를 조성하고, 각종 대형 미술품이 즐비해도, 다른 데로 가기 전 그저 쉬면서 쇼핑하는 장소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잇따라 열린 카타르 월드컵과 아시안컵과 엑스포가 판도를 바꿔놨다. 이 나라가 궁금해진 것이다. 공항 바깥으로 도하(渡河)하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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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쓴 아랍 여인을 형상화한 이슬람 예술 박물관. 도하 해변 산책로 코르니시에서 바라보면 또 다른 신비가 느껴진다. /이슬람예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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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시안컵 등을 공식 후원한 국적 항공사 카타르항공도 ‘스톱오버(stop over·단기 체류)’ 상품을 적극 홍보하며 모객에 열성이다. 목적지로 넘어가기 앞서, 잠깐 짬을 내 카타르 이색 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 짧게는 하루, 길게는 4일간 사막의 훈풍을 쐴 수 있다. 앞세운 무기는 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가성비’. 편리한 여행 스케줄, 교통, 저렴한 호텔비 등이다. 카타르항공에 따르면 스톱오버 프로그램 이용객 상당수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바쁜 한국인, 가성비 따져봅시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아 나오니 현지 시각으로 오전 6시였다. 보통의 경우 공항에서 도심까지 가는 길부터 지치기 쉽다. 인천공항만 해도 서울 진입까지 1시간은 잡아야 하듯이. 차로 20분 정도 달리니 ‘도하의 청담동’으로 불리는 중심가 므셰립(Msheireb)이었다. 호텔 입구까지 20분 컷. 물론 지하철로도 이동할 수 있다. 인천발 도하행 카타르 항공기는 오전 12시 15분에 하루 한 대 출발한다. 시차를 고려하면 도착 시각이 새벽 5시다. 숙소에 짐을 풀고 활동을 재개하기까지 충분한 휴식 시간이 확보된다. 밤 비행기라 이미 계속 자면서 왔으니. 4월부터는 금요일에 한해 오후 6시 45분발 항공편이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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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예술 박물관 1층 테라스로 나가면 보이는 전망. 아치 너머로 도심의 초고층 스카이라인이 한 폭 그림으로 변모한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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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머니로 흥건한 곳, 카타르는 번쩍번쩍한 동네다. 물가도 만만한 편이 아니다. 그런데 스톱오버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5성급 호텔이 1박에 23달러(약 3만원)부터다. 4성급 호텔은 14달러 수준. 하루 정도 일정을 따로 뺄 동기부여가 충분히 되는 것이다. 한 현지 가이드는 “잠깐 들렀다가 좋으면 더 오래 묵으려 재방문하지 않겠느냐”며 “그게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하룻밤, 짧다면 짧지만 역사가 이뤄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건축의 실험실… 스쳐 지나도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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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첫손에 꼽히는 카타르 국립박물관. 사막의 돌 '데저트 로즈'를 모티프로 설계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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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도심만 산책해도 눈요기가 된다. 세계적인 건축물의 보고(寶庫).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카타르 국립박물관’은 그 대표적 증거다. 사막 지대에서 발견되는 ‘데저트 로즈(Desert Rose)’에서 영감을 얻어 외관을 꾸몄다. 데저트 로즈, 사막 장미라고 하니 꽃인 줄 알았는데 암석이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걸 보고서야 알게 됐다는. 결정(結晶)처럼 불규칙하지만 아름다운 배열로 완성되는 하나의 덩어리. 가히 ‘아이보리 매직’이라 할 만하다. 현재 카타르의 자연·문화를 주제로 한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데, 전시보다 외관을 둘러보는 게 더 흥미로울 정도. 시공사가 현대건설이다.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이슬람 예술 박물관’이 있다. 중국계 미국 건축가 이오 밍 페이가 설계해 2008년 개관한 이곳은 이슬람 예술 1400년사(史)를 드러내는 도하의 랜드마크다. 해안 산책로 코르니시(Corniche)를 걷다보면 아랍 돛단배 다우(Dhow) 수십 척이 정박한 항구 너머로 박물관이 보이는데, 비유가 아니라 건물의 안면 윤곽에서 히잡 쓴 무슬림 여인의 눈빛이 느껴질 것이다. 이곳 카페는 통유리 전망 맛집으로 유명하고, 1층 테라스로 나가면 세 개의 아치 구멍 너머로 도하의 초호화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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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라 문화 마을 내 '비둘기 타워'. 폭염에서 비둘기를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 지은 것이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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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민속(?)에 가까운 광경을 원한다면 ‘카타라 문화 마을’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공연용 콜로세움이나 거대한 선인장처럼 생긴 비둘기 타워(집), 모스크 등이 모여 있다. ‘므셰립박물관’ ‘마타프 현대 아랍미술관’처럼 깔끔하고 한적한 미술관도 여럿. 다이아몬드 형태의 ‘카타르 국립도서관’은 의외의 발견이었다. 놀라움은 실내에서 더 커졌다. 얼핏 대규모 연구소처럼 디자인된 열람실에 100만 권의 장서가 꽂혀 있는데, 지하에는 고서(古書) 전시장까지 있다. 간혹 날씨의 피난처가 돼주기도 한다. 여름엔 기온이 50도까지 올라가니까. 2월 낮 기온은 23도 수준이지만, 반팔 옷만 가져갔다가 감기를 얻었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닥쳤다.

◇사막에서 거침없는 가속 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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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남부의 사막 지대를 질주하는 '사막 사파리' 프로그램. 말 그대로 광란의 레이스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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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은 이곳의 특산품이다. 제일 인기 있는 투어 프로그램 역시 ‘사막 사파리’. 5인승 SUV 차량을 타고 모래 구릉 위에서 냅다 ‘풀액셀’을 밟으며 격하게 핸들을 꺾는 일종의 롤러코스터다. 도하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달리면 50m 높이 모래 구릉이 나타난다. 코르 알 아다이드(Khor Al Adaid), 700km² 규모의 사막 지대. 도요타 랜드크루저가 분명 이곳의 트로트일 아랍 노래를 토해내며 차체를 틀 때마다, 바가지째 끼얹듯 모래가 유리창에 몰아쳤다. “헉” 소리가 절로. “이러다 차 뒤집히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 무렵, 진짜로 차가 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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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실컷 황야의 바람을 마시다 이곳에 이르러 잠시 모래를 씻는다. '리젠시 시라인 캠프' 앞 해변에 그네가 놓여 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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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내해(內海)가 있다. 사막과 바다가 한눈에 담긴다. 바닷물에 맨발을 씻다가 뒤돌면 광활한 사막. 소금이 섞여 있어 모래가 하얀데, 그래서 더 몽환적이다. 참고로 카타르는 반도(半島)다. 조금 더 달리면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해안에 닿는다. 이곳의 석양은 특별히 진하다. 카메라에 ‘작품’ 하나쯤 담아가기 용이한 것이다. 배가 고플 땐 ‘리젠시 시라인 캠프(Regency Sealine Camp)’ 같은 호텔, 아니 오아시스로 가 끼니를 해결하거나 하루 묵어 갈 수도 있다. 가끔 렌터카로 직접 사막 주행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만 보험 적용은 안 된다.

◇낙타 타고, 매 구경… 옷차림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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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장 '수크 와키프'에서 한 어린이가 낙타 타기 체험을 하고 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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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를 가장 빨리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는 시장(市場)에 가는 것이다. 전통시장 ‘수크 와키프(Souq Waqif)’. 도하의 핵심부에 위치한 만큼, 여행의 시작을 여기로 삼아도 좋다. 아라비안나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베이지색 건물마다 각종 의류 및 식재료 상점부터 예멘·이집트·레바논 등 인근 아랍 음식점이 빼곡하다. 낙타를 타거나 ‘매 시장’도 둘러볼 수 있다. 여기서 거래되는 매 중에는 수억 원에 달하는 비싼 몸도 있다. 낮에는 다소 소박해 보였던 시장은 밤이 되자 조명과 함께 휘황찬란한 본색을 드러냈다. 치안은 비교적 안전한 편. 원칙적으로 금주(禁酒) 국가이고, 술 파는 곳 역시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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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전통 시장 '수크 와키프' 내부 풍경. 좁은 골목마다 현지 감성 가득한 상점이 빼곡하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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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건 지켜야 한다. ‘수크 와키프’ 곳곳에는 그림으로 된 ‘복장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 더운 나라에서 왜 이러나 싶지만, 원피스나 민소매·핫팬츠 조합은 금지. 전체 면적이 경기도 수준으로 작은 나라, 월드컵 개최로 놓인 최신식 지하철이 웬만한 관광지와 빠르게 연결돼 편리하다. 다만 남녀유별. 여성은 아이들과 함께 ‘패밀리’, 남성은 ‘스탠더드’ 칸에 타야 한다. 통장에 여유가 있다면 좌석이 더 쾌적한 ‘골드’ 칸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본 바 남녀 가릴 것 없이 ‘스탠더드’ 칸에 섞여 탔고 누구도 눈치 주지 않았다. 그러나 ‘골드’ 칸에 들어가면 제지당하더라는.

◇아무 때나 오세요, 24시간 열려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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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할 24시간 식당 '알 카이마'. 양갈비 네 쪽과 샐러드와 음료까지 69리얄(약 2만5000원)이 나왔다. 물가 비싼 카타르에서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한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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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축구 관람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도하 도착 당일, 그러니까 지난 2일, 오후 6시 30분에 대한민국 대 호주 경기가 잡혀 있었다. 일정이 빡빡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박물관 두 곳과 도서관까지 둘러봤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지하철을 타고 알 자누브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자국팀 경기가 아니니 관중석이 널널할 거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거의 만석. 붉은악마보다 더 열렬히, 얼굴에 태극기까지 그린 채 “코리아”를 부르짖는 카타르 소녀들을 보면서 조금 의아했다. 이유가 뭐지? 다른 현지인에게 슬쩍 물어보니 “BTS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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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나 밤이나 인파로 북적이는 24시간 카페 '티타임' 앞. 이곳 밀크티는 거의 국민 음료 수준으로 사랑받는데 이름이 '카락(Kara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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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가 끝나면 대개 늦은 밤. 식사가 애매할 수밖에 없다. 걱정 없다. 한국 뺨치게 ‘24시간’ 식당과 카페가 수두룩하니까. 24시간 양갈비 전문점 ‘알카이마(Al Khaima)’로 향했다. 가성비 맛집으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짭짤한 양갈비 네 쪽에 44리얄(약 1만6000원)이고 거대한 구운 빵이 무료로 제공된다. 사이드 메뉴와 음료를 추가해도 2만~3만원대. 한 점원이 “어제 한국 축구대표팀이 여기서 단체 회식을 했다”며 손흥민과 찍은 핸드폰 사진을 보여줬다. 일요일 밤, 손님 10팀 중 9팀이 한국인이었다. 딱 한 팀이 일본인이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점원들은 한국말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K관광객의 위력이라 해야 할지.

[이 병원에선 ‘매’만 진료합니다]

도하 ‘매 전문 병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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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를 지나던 한 남성이 팔에 앉은 흰 매를 보여줬다. 이 한 살짜리 매가 2700만원에 달한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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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는 카타르의 국조(國鳥), 매사냥은 부를 상징하는 고급 레포츠다. 도하 최대 전통 시장 ‘수크 와키프’에만 매 판매점이 15곳 있고, 누구나 들어가 매 구경을 할 수 있다. 매뿐 아니라 매 관련 각종 액세서리 등을 취급한다. 매 값은 수십만 원부터 수억 원까지 천차만별. 한 남성이 팔에 흰 매를 얹고 거리를 돌아다니기에 가격을 물어봤다. 한 살짜리가 2만달러(약 2700만원)라고 했다.

귀한 몸. ‘매 전문 병원(Souq Waqif Falcon Hospital)’이 매 시장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3층 건물 전체가 병원. 2008년에 설립돼 직원만 40여 명. 24시간 응대 팀도 운영한다. “성수기에는 매일 130~150마리를 대상으로 건강 검진 및 수술을 진행한다”고 했다. 엑스레이는 물론 혈액 및 내시경, 유전자 검사까지 한다. 깃털 이식이나 부리 교정 수술, 때로는 발톱 손질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바닥에 표시된 동선이 매 발자국 스티커로 돼 있다. 말 그대로 환자 중심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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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크 와키프 매 시장 골목에 자리한 '매 전문 병원' 입구.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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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으로 마감된 대기실 소파에 흰색 도브(Thobe) 차림으로 앉아 있는 보호자들, 그리고 홰에 앉아 얌전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매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비로소 관광지가 아닌 이 나라의 내부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극정성 매 사랑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지난달 ‘카타르 국제 매사냥 축제’가 열렸다. ‘흰 매’ 미용 부문 우승 상금이 약 2억5000만원이었다.

[도하=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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