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3일(현지시간) 영국 로열 랭캐스터 런던 호텔에서 개최한 '금감원·지자체·금융권 공동 런던 투자설명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원장은 "국내 금융회사나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며 "(금융사들이) 지금처럼 여건이 나쁜 상황에서 이 정도 감내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해외 대체투자 포지션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금융감독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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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해외 부동산이 국내 금융사나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입장을 밝혀 온 금융감독원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을 설명하기 위해 언론을 소집했다. 그간 금감원은 굵직한 사안에 대해서만 언론 브리핑을 진행해 왔다.
실제로 직전 브리핑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도화선이 될 뻔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대응 방안, 그리고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던 공매도의 시장 점검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해외 부동산에 대한 위험성에 대한 금감원의 판단이 바뀐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특히 지난해 10월 ‘2023년 6월 기준 금융사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은 보도자료만 배포했을 뿐 브리핑은 열지 않았다는 점이 이같은 우려에 힘을 실었다.
김병칠 금융감독원 전략감독 부원장보가 22일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금융회사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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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나온 금감원의 입장은 ‘해외 부동산, 심각하지 않다’ 그대로였다. 금감원이 기자들을 소집한 이유는 18일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농협)이 해외 부동산 투자로 1조원을 손실 봤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검증되지 않은 수치가 시장에 돌아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브리핑까지 연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주말 복수의 언론은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인용해 5대 금융그룹의 해외 부동산 투자 원금은 20조3868억원으로, 이중 1조1002억원이 현재 평가손실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에 금감원은 보다 정확한 수치를 공표하기 위해 ‘2023년 9월 기준 금융사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브리핑을 연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은 56조4000억원으로 금융권 총자산인 6800조9000억원의 0.8% 수준에 그친다. 브리핑을 진행한 김병칠 금감원 전략감독 부원장보가 “대체 투자 리스크는 국내 금융사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업권별 투자액을 보면 보험이 31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은행(10조1000억원), 증권(8조4000억원), 상호금융(3조7000억원), 여전(2조2000억원), 저축은행(1000억원) 순이다.
투자 규모가 가장 큰 보험사만 보더라도, 이들의 투자 방식은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보험사는 고객에게 보험금을 받아 운용하기에 자금 조달 비용이 크지 않다. 때문에 해외 부동산에 투자할 때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후순위가 아닌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선순위로 들어간다.
그나마 위험한 업권은 후순위(에쿼티)로 투자한 증권인데, 증권사 역시 해외 부동산으로 받을 타격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부동산 손실 예상에 따른 충당금을 적립하면서 지난해 4분기만 떼놓고 보면 적자를 기록한 증권사들이 나왔지만, 2023년 전체로 보면 결국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미래에셋증권의 적자는 1580억원, 신한투자증권은 1255억원이었지만, 2023년으로 따지면 두 회사 모두 흑자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은 2980억원, 신한투자증권은 100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김 부원장보는 브리핑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금융사는 없었다”며 “특정 증권사가 문제가 될 것 같진 않다”고 설명했다. 확실하지 않은 수치로 시장 불안감이 고조되자 금감원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례적으로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현황을 직접 설명하기에 나선 것이다.
한편 개인의 투자 현황에 있어서도 금감원은 동일한 논리로 설명했다. 개인이 투자한 공모펀드 중 올해 만기를 맞는 펀드는 8개로 설정액은 9000억원이다. 수조원의 손실이 예측되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비교해 큰 금액은 아니라서 금융당국은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투자 규모를 근거로 금융 충격을 판단하는 건 금융사와 사회 전체로 봤을 땐 합당할지 몰라도, 각 가정으로 좁혀보면 아닐 수 있다. 금감원이 반복적으로 괜찮다고 강조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형태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후 대비를 위해 해외 부동산 펀드를 찾았다가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한 투자자는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가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고 추천해 입문했다”며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은 증권사 PB가 원망스럽고 그걸 따라간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ELS처럼 피해자가 많은 영역만 금감원이 신경 쓰는 것 같아 야속하다”고 토로했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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