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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이대남’이 이상해진 이유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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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8 세계 여성의 날을 나흘 앞둔 지난해 3월4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제38회 한국여성대회가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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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ㅣ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각국에서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 간 이념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나라든 젊은이는 진보적이고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된다. 그런데 최근 많은 나라에서 젊은 남성들이 보수화되며 남녀 간 이념이 크게 갈리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한국 사례가 언급됐는데 그중 한국이 특히 이상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젊은 남성이 보수화되고 있긴 하지만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여전히 보수보다 진보에 가까웠다. 대한민국은 달랐다. 그래프를 보면, 한국의 젊은 남성은 2015년 무렵부터 다이빙을 하듯 아래쪽으로 처박히고 있다. 극단적으로, 또 빠른 속도로 보수화되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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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타임스 갈무리.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쉽게도 기사는 현상만 제시할 뿐 배경이나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퍼뜩 몇 단어가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외로움’이다.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외로움의 습격’에서 “외로운 시대에 가장 외로운 세대”가 20대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외로움이 순전히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정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혐오하게 만들며 심지어 죽게 하는 심각한 사회 현상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책은 또한 외로움이 개인만이 아니라 “실제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한나 아렌트의 사유를 빌려 이렇게 경고한다. “전체주의는 외로워진 대중의 지지로 유지된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외로움의 습격”은 젊은 여성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왜 여성은 진보화되고 남성은 보수화되었을까? 하나의 이유로 환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사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념 격차가 극명해진 변곡점은 2015년이다. 미투 운동,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 물결이 다시금 밀어닥친 시점이다. 그런데 그저 페미니즘을 답으로 내미는 건 너무 납작한 설명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지가 중요하다.



짧은 칼럼에서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무리하게 요약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젊은 남성은 ‘피해 서사’에 머문 반면, 젊은 여성은 ‘연대 서사’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여성은 피해자 정체성에 갇히는 대신, 다른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서로를 돌보았다. 그 결과 전례 없이 많은 새로운 정치적 결사와 돌봄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반면 일부 젊은 남성은 군복무라는 자신의 피해자성을 말하면서 공동체의 자원에 ‘무임승차’하는 집단을 공격하는 데 몰두했다. 물론 한국이 여전히 남성 중심 사회이기에 새삼스레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또한 ‘친목질 금지’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룰을 과잉 내면화한 나머지, 젊은 남성들끼리 최소한의 연대조차 만들지 못한 면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피해 서사에 머무느냐 아니면 연대 서사로 나아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대의’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페미니즘이라는 토대가 있었기에 갈등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질감을 높이며 연대할 수 있었다. 젊은 남성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굳이 꼽자면 능력주의 정도이겠으나 그것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논증했듯 이론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정당화되기 어려울뿐더러 뛰어난 남성을 뜻하는 이른바 ‘알파 메일’ 이외 남성을 배제하는 자승자박의 논리다.



지난 몇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대의로 치열한 인정 투쟁을 벌였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제도·문화적인 성취도 이뤘다. 반면 젊은 남성 집단은 ‘일베’ 이미지만 강해졌다. 물론 그들 일부는 명실상부 극우파에 차별주의자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잡아도 그 비율은 20~30%를 넘지 않는다. 최근 몇년간의 여러 통계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바는, 젊은 남성이 어떤 집단보다 갈가리 찢겨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젊은 남성들 서로의 차이는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차이 이상일지 모른다.



오늘날은 어떤 대의 혹은 ‘거대 서사’ 속에서 공동의 가치를 찾기 어려운 시대다. 세계 속 나의 자리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이 ‘세계 없음’(worldlessness)의 상황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정체성 공백과 만성적인 ‘인정 불안’을 유발한다. 그들을 싸잡아 괴물로 만드는 대신 면밀히 들여다보고 조곤조곤 말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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