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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한국식 브런치라는데 '와플 닭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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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케이드라마 인기 끌며 파리 한식당도 '붐'

코로나19 이전 200곳→작년 기준 350곳 확대

중국인들, 일식당 접고 한식당으로 전환…맛은 '갸우뚱'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의 한 한국식 브런치 카페 메뉴. 와플베이컨과 와플닭강정.
[왼쪽 사진 촬영=송진원/ 오른쪽 사진은 구글 지도 후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기자는 프랑스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한 달만인 지난해 9월 어느 주말 낮, 파리 시내의 한 브런치 카페를 찾았다.

소셜네트워크에서 한국식 브런치 메뉴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카페로 소개된 곳이었다. 평점도 4점이 넘었다.

예약을 받는 곳도 아니어서 일단 찾아갔더니 대기 줄이 10m 넘게 이어져 있었다. 대부분 현지인이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손님들도 이제 막 음식을 먹기 시작한 터라 족히 한 시간은 기다려서 겨우 동행자와 테이블에 앉았다.

얼마나 맛있길래 이 많은 손님이 기다리고 있던 걸까 기대를 잔뜩 안고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에그 토스트, 베네딕트까진 평범했는데, 다음 메뉴들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와플 닭강정, 와플 베이컨, 와플 훈제연어, 아보카도 김치 토스트. 이 중 단 한 메뉴도 서울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 터라 도대체 무얼 골라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슬쩍 옆 테이블을 보니 동그란 와플 위에 닭강정과 계란프라이, 아보카도가 옹기종기 올라간 접시가 놓여 있었다. 화룡점정, 참깨도 그 위에 솔솔 뿌려져 있었다.

기존에 입력돼 있던 이 4개 음식 각각의 맛을 살려내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먹어봤다. 답은, 이건 아니다가 나왔다.

절반은 도전하는 마음으로, 절반은 너무 큰 위험은 피하자는 마음으로 와플 베이컨을 주문했다.

그러나 종업원이 들고 온 미지의 와플 베이컨은 1시간을 기다린 고생을 보상하지 못했다. 식어서 나온 베이컨을 거의 그대로 남겼다.

종업원에게 혹시 가게 주인이 한국분이냐 물었더니 중국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케이팝(K-Pop), 케이뷰티(K-beauty), 케이드라마(K-Drama) 등 한국 문화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근래 미식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 케이푸드(K-food) 바람을 탄 식당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다.

찌개, 구이, 치킨, 분식 종류를 넘어 브런치 카페, 심지어 포장마차를 흉내 낸 가게들도 성행하고 있다.

2017년 무렵부터 파리에서 한식당을 운영해 온 A씨는 "코로나19 이전에 한 200개 정도였던 한식당이 지금은 너무 많이 늘었다"며 "체감으로는 일주일에 두세 군데씩 새로 생기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실제 프랑스 한식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무렵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 일드프랑스의 한식당은 200곳 정도였으나 지난해 기준 350곳가량으로 늘었다.

한국 스타일, 한식당 등으로 홍보하며 새로 문을 여는 곳들 가운데엔 진짜 한국인들이 주인인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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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3구의 한 중국계 한식당
[촬영 송진원]


그러나 최근 새로 생기는 한식당의 80∼90%는 중국계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따지면 파리 시내의 한식당 가운데 30∼40%가 중국계라는 게 한식협회 측 설명이다.

한식협회의 한 전직 간부 A씨는 "2008년 프랑스에 스시 열풍이 불어서 일식당이 한 5천개까지 달했는데 요즘은 많은 곳이 폐업하고 한식당으로 변경하고 있다"며 "특히 일식당을 3∼4개씩 운영하던 중국인들이 축적한 자본으로 한식당을 여는 데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계 한식당들은 적극적인 홍보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특히 한식당의 주 소비층인 16∼35세 현지인을 겨냥해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커뮤니케이션 창구로 활용한다.

실제 기자도 인스타그램에서 "진짜 한국 식당", "최고" 등의 호평을 보고 새로 생겼다는 한식당을 찾았다가 중국인 종업원들을 맞닥뜨린 적이 있다.

메뉴는 치즈 닭갈비, 치즈 돼지갈비, 소불고기 등이었는데, 모양과 맛을 비슷하게 흉내는 냈으나 간장과 설탕을 들이부은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도 100㎡ 되는 식당 내부가 손님들로 꽉 들어찰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A씨는 "중국인들이 한식당을 열 때 기존 한식당에서 일했던 조선족들을 요리사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한식당 맛을 비슷하게 흉내 낸다"고 말했다.

4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가면 메뉴판에 오탈자가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메뉴판에도 공을 들인다. 한국의 일부 식당이 메뉴판 인쇄를 중국 업체에 맡기는데, 파리의 중국계 한식당들도 이들 외주업체에 메뉴판 인쇄 주문을 넣는다는 것이다. 식자재 물류도 한식으로 바꾸는 추세라고 한다.

이런 한식당 붐을 지켜보는 한국인 주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파리 시내에서 10년 넘게 한식당을 해 온 B씨는 "진짜 한식당도 아닌데 한식당이라고 홍보하고 정체성을 모를 음식을 파는 곳들이 있다"며 "외국인들이 그런 음식을 맛보고 이게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식당 주인인 C씨도 "한식당이 앞으로 몇 년은 더 붐이 이어지겠지만 무분별하게 생기다 보면 7∼8년 후엔 지금의 일식당들 쓰러지듯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2017년부터 한식당을 운영해 온 D씨는 "아주 좋은 현상일 수도 있다. 과거 일식이 그런 식으로 확장해 지금은 보편화했다"며 "전체적으로 파이가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D씨는 "중국계 한식당이어도 홀에는 한국인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다"며 "고용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D씨 역시 "한국 음식을 망치는 경우가 좀 많아서 우려스럽긴 하다"고 인정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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