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 인터뷰
지난 2월 14일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이 서울 마포구 녹색전환연구소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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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1월 22일 ‘기후정치바람’은 전국 17개 시·도 1만7000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국민 인식조사(전국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후정치바람’은 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기후위기 이슈를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만든 단체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27일까지 ‘기후유권자를 찾습니다’라는 목표로 실시된 이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의 기후위기 인지도, 민감도, 정책에 대한 관심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유권자 중 33.5%가 기후위기 이슈에 관심도가 높고, 기후위기 의제에 반응하는 ‘기후유권자’였다. ‘기후정치바람’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유권자들은 이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거론되는 다양한 제도를 전면적으로 깊이 있게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22대 국회의원 임기인 2024년에서 2028년까지는 기후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이라며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비전 없이 선거에 나서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론조사는 22대 총선뿐만 아니라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겨냥해 매해 실시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지도는 높다. 정치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기후위기는 다른 정치적 의제들에 밀려나곤 했다.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기후위기가 이렇게 후순위로 밀려나도 되는 주제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기획이다. 기후위기라는 정치적 의제를 갖고 투표하는 유권자들을 조사·분석해보기로 했다. ‘기후유권자’의 규모, 분포, 지지 공약 등을 분석해 기후위기 대응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고, 그 지도를 따라서 기후위기 정책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계층별·연령별·지역별로 유권자들의 입장을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조사 규모를 시·도별 1000명씩 1만7000명으로 키웠다. 단순히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도의 피상적 조사에 그치지 않기 위해 5개월에 걸친 전문가 세미나를 통해 172개의 질문을 준비했다. ‘본인의 자산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기후위기 정책이 일자리 수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살고 계신 지역의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등 기후위기가 유권자들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의 질문들을 제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3.5%를 ‘기후유권자’로 분석했다. ‘기후유권자’는 정확히 누구이며, 이 수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후유권자’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보를 인지하고 있고 기후위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위기 의제를 중심에 두고 투표할 수 있는 성향을 지닌 유권자를 뜻한다. 이 3가지 특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조사를 진행했고 응답 결과를 분석해 ‘기후유권자’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33.5%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유권자들에게 기후위기는 이미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 셈이다. 이 정도 규모의 ‘기후유권자’라면 정치인들은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대변해주는 정치인도 없었고 정치적 의제로 발현될 공간도 없었다. 정치인들이 여기에 답변을 하고 공약을 내고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자기 비전을 갖도록 하는 게 앞으로의 숙제다.”
-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기후변화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서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92.9%였다. 기후위기가 ‘인간의 경제적인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에 대해 한국사회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당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를 넘어 비용마련 방법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탄소세 신설’이 37.8%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21대 국회에서도 탄소세 법안이 3개(장혜영 정의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돼 있다. 탄소세를 거두고 마련된 재원을 배당 등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사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나왔지만, 사회적 논의가 아직 활발하게 확장되지는 않고 있다. ‘탄소세 신설’에 대해 이 정도의 지지도가 나왔다면 관련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흔히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규제정책은 회피하리라 생각하는데 조사 결과는 이와 달랐다. 탈(脫)내연기관 정책에 관한 질문을 보면 신규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에 대한 찬성이 63.8%, 반대가 26%로 나타났다. 차량의 총 대수를 제한하는 차량등록제를 실시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56.6%가 찬성, 33.9%가 반대했다. 유권자들은 이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거론되는 다양한 제도를 전면적으로 깊이 있게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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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는 준비가 돼 있는데, 왜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나.
“첫째, 정치가 기후위기 대응을 구체적인 정책과 생활의제로 연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전환해야 하고 에너지전환은 산업전환과 연결돼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얼마만큼 확충하고 산업 부문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 논의가 돼야 한다. 또 에너지전환은 집, 교통, 먹거리 등과도 다 연결된다. 예를 들면 정부와 정치권은 주택 문제를 공급의 측면에서만 말한다. 폭염, 한파, 홍수, 산불 등 기후재난에 안전한 주택으로까지 연결을 못 한다. 둘째, 정치와 언론 모두 수도권 중심으로 의제화돼 있기 때문이다. 기후재난은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전남은 심한 가뭄을 겪었고, 충남·강원·경북에서는 산불이 났다. 제주도도 기후위기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수도권 중심의 사회에서 기후위기에 영향을 받는 곳이 주로 비수도권이다 보니 기후위기에 심각성을 느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적 의제로 이어지지 못했다.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것보다 정치권에서 기후위기 의제가 과소대표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다. 지금 선거가 50일 정도 남았는데, 기후위기를 비롯해 불평등, 인구위기 등 유권자가 시급하게 느끼는 이슈들이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가 아니라 당장 2030년까지 18개의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했는데 6년 안에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숙제를 해야 한다. 예컨대 태안, 하동, 보령, 삼천포 등 석탄발전소 폐쇄 지역 주민들의 경제활동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하는데 정치권이 이 숙제를 미루고 있다.”
기후유권자가 결집하면서 선거에서 강력한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선거 결과는 기후위기 정책과 제도 마련으로 이어질 것이다. 2027년 대선에 나오는 후보자는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리더십 없이 출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전히 선거를 앞두고 각종 개발 공약이 먼저 나온다. 또 지역소멸이 가시화되면서 각 지역에서 공장 유치 등의 일자리 공약을 앞세우고 있다.
“정치권은 정책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이 힘들고 괴로운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안전해지면서 일자리도 창출하고 비용도 줄이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온실가스도 줄이고 생활비도 절감하면서 일자리도 만들 수 있는 1석3조의 정책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대적으로 주택의 단열을 개선하는 집수리 사업을 벌이면 에너지 소비를 줄여 온실가스도 줄이면서 지역의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 또 공공교통에 투자하는 것도 일자리 창출과 연결된다. 왜 버스기사는 녹색일자리가 아닌가. 공공교통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이용자들의 비용을 낮추고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설득해 나가는 게 정치권이 할 일이다.”
-조사 결과 지역별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 수요가 조금씩 달랐다.
“이번 조사를 통해 각 지역의 유권자들이 분명하게 원하는 정책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는 폐쇄되는 군공항부지를 ‘100만 평 숲’으로 조성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조사 결과 광주지역 응답자의 77%가 여기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의 찬성률이면 광주광역시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걸어도 되지 않을까. 울산광역시는 응답자의 76.7%가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광역시에서는 갯벌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것에 대해 81.1%가 찬성했다. 각 지역의 출마를 준비 중인 후보자들이 귀 기울이고 준비해볼 만한 정책들이다. 한편 전국적인 이슈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응답에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전기요금 차등화’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57.5%가 찬성했는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찬성률에 차이가 있었다. ‘전기요금 차등화’ 도입으로 비용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수도권의 찬성 비율(51%)이 비수도권(64.2%)보다 낮았다. 기후위기 대응에 한발 한발 더 깊이 들어가면서 합의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들이다.”
-2024년을 ‘기후총선’의 해로 만들기 위해 기후유권자들의 결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22대 국회의원 임기인 2024년에서 2028년까지는 기후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이다.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비전 없이 선거에 나서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후보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물었는데 62.3%가 더 관심을 두겠다고 응답했다. 어떤 방식으로 관심을 두겠냐는 질문(복수응답)에 투표(90.7%)는 물론 주변에 지지를 권한다(41.2%)는 응답률도 상당히 높았다. 기후위기에 대해 강한 행동 의지를 가진 유권자들이 존재하는 만큼 이를 캠페인으로 엮을 생각이다. 우리 지역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직접 유권자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공약을 물어보고, 후보자들을 불러 토론회를 열 수도 있다. 선거를 앞둔 지금이 정치인들이 가장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언론사 및 정치평론가들도 기후위기를 곁다리 이슈가 아닌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이들이 각 정당과 후보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평가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향후 계획은.
“2월 21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초격전지에서의 기후공약’에 대해 발표한다. 석탄발전소 폐쇄 지역, 기후재난이 발생한 지역 등에서 어떤 맞춤형 기후공약이 가능할지를 논의할 예정이다. 21대 총선에서 3% 이하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선거구가 24곳 정도다. 이 같은 초격전지에서는 ‘기후공약’이 당락을 가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월 말 또는 3월 초쯤에는 17개 광역시·도의 기후유권자를 분석한 ‘지역별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각 지역의 후보자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 ‘기후유권자를 찾습니다’ 프로젝트는 ‘기후유권자’의 규모, 분포, 경향성 등의 변화 및 추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2027년 대선까지 매년 시행할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기후유권자가 결집하면서 선거에서 강력한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선거 결과는 기후위기 정책과 제도 마련으로 이어질 것이다. 2027년 대선에 나오는 후보자는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리더십 없이 출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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