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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연금과 보험

불황에… 보험 담보 잡히고 받은 대출 6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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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현금 융통할곳 마땅찮아”

보험계약대출 두달새 2조 급증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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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에서 동네 마트를 운영하는 박모 씨(38)는 최근 10년 동안 내오던 연금보험을 담보로 1500만 원의 보험계약대출을 받았다. 인근 전셋집의 계약 종료를 한 달 앞두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3000만 원 올려달라고 요청해온 탓이다. 박 씨는 “설 명절 전후로 평소 대비 2배 이상은 뛰어야 할 매출이 올해에는 1.5배에도 못 미쳤다”며 “더 이상 현금을 융통할 곳이 마땅치 않아 노후 밑천인 연금보험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표적인 경기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보험계약대출이 60조 원에 육박하고, 보험 해약·효력상실 환급금도 2년 연속 40조 원을 돌파했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고금리 장기화로 ‘급전’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카드론과 리볼빙 잔액도 43조 원을 넘긴 상황이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22개 생명보험사의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59조5499억 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해 9월 말(57조1821억 원) 대비 2조 원 넘게 급증한 수치다. 보험계약대출은 가입자가 본인의 계약을 담보로 받기 때문에 별도의 심사가 없고 신용등급과도 무관하다. 은행 대출이 어렵거나 단기간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주로 찾는다.

“돈 나올 곳 없어”… 손해 감수하고 보험해지 40조, 카드론 35조

불황에 보험대출 60조
보험계약대출 1년만에 11조 늘고
원금 못 건지는 보험 해지도 증가
금리 20% 육박 리볼빙 잔액 7조… “정책자금 활용-가산금리 낮춰야”


동아일보

보험계약대출 증가세는 뚜렷하다. 2020년 11월 말 기준 45조8969억 원 수준이던 국내 생명보험사의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2022년 48조 원을 훌쩍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60조 원에 육박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년 사이 대출 총액이 약 11조 원 증가했다는 것은 대출 신청 자체가 많아졌다는 뜻”이라며 “지난해부터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고 변액보험 등 특별계정의 보험계약대출이 통계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 원금 못 건지는 보험 해약 급증

보험 계약을 아예 해지해 버리거나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인 김모 씨(34)는 최근 매달 40만 원씩 4년 넘게 내던 저축성 보험을 깨버렸다. 지금껏 낸 원금은 2000만 원을 넘지만, 해지 환급금은 1500만 원 수준. 김 씨는 “앞서 보험계약대출을 일으킨 금액을 제외하면 수중에 떨어진 돈은 300만 원 정도”라며 “원금을 잃는 것이 아깝지만, 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이자 부담이 너무 커졌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22개 생명보험사가 지급한 보험 해약·효력상실 환급금은 총 42조562억 원 규모다. 전년 동기(46조7796억 원)보다는 줄었지만 2020년(38조585억 원), 2021년(38조2894억 원)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늘었다.

해약 환급금은 가입자가 보험 계약 해지를 요청했을 때, 효력 상실 환급금은 가입자가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내지 않아 계약이 해지됐을 때 보험사로부터 돌려받는 돈이다. 국내 한 생명보험사 지점장은 “보험사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뗀 후 나머지를 굴려 만기 이후 줄 돈을 마련하기 때문에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면 원금보다 적은 돈을 돌려받을 수밖에 없다”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보험을 깨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 급전 창구 카드빚도 ‘위험 수위’

고금리·고물가 이중고에 서민들의 급전 수요는 카드사로도 몰리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롯데, 삼성, 신한, 우리, 하나, 현대, KB국민 등 7개 전업 카드사의 카드론(장기카드대출) 잔액은 35조8063억 원으로 1년 전(33조6404억 원)보다 2조1659억 원(6.4%) 증가했다.

같은 기간 리볼빙 이월 잔액(7조4233억 원)도 1612억 원 불어났다. 리볼빙은 일시불로 물건을 산 뒤 카드 대금의 일부만 먼저 결제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갚는 서비스로, 금리가 법정 최고금리(연 20%)에 육박한다. 지난해 말 이들 카드사의 리볼빙 금리는 연 15.66∼18.13% 수준이다.

문제는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서민들이 ‘빚 돌려막기’까지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1년 새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277억 원에서 1조5935억 원으로 55% 이상 급등했다. 기존 대출을 미처 상환하지 못해 더 높은 금리와 신용등급 하락을 감수하고도 대출을 갈아타는 사람들이 늘어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진 서민들을 위해 다양한 자금조달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불황형 대출의 증가는 원금을 상환할 수 없는 서민들이 고금리로 대출을 연장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러한 상황이 불법 사금융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책 자금을 활용하거나 가산금리를 낮춰 이자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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