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마을 시절 고인과 아이들. 기독교교회협의회 제공 |
1987년 한국 찾아 89년부터 6년 동안
서울 양돈마을 판자촌에서 선교 활동
“노동 지친 부모님 대신 아이들 돌보고
사랑과 나눔 필요한 곳 어디든 찾아”
한민족 통일 위한 협력운동에도 헌신
“한국·한반도 사랑한 이로 기억될 것”
지난달 17일 소천한 룻츠 드레셔 선교사는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던 고 안병무 교수님이 지어주신 도여수(道如水)라는 한국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일(선교)하시는 민중현장에서 흐르는 강물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분입니다.
경건한 목회자 가정의 어머니와 ‘슈바르츠 발트’(검은 숲)를 관리하신 아버지 사이에서 1953년 12월 1일 독일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 히멜라이히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인은 1987년 2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로 파송되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6월 민주항쟁과 88년으로 이어지는 노동자대투쟁 등 격변하는 한국사회의 인권과 민주화운동을 경험했습니다. 바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민중신학을 실천하는 서울 하계동 ‘양돈마을’ 영은교회에서 89년 9월부터 6년 활동했습니다. 양돈마을은 말 그대로 축사를 개조한 판자집에서 800여 세대의 주민들이 거주한 곳으로 날씨가 좋으면 흙먼지가 날리고 비가 오면 질척이며 자주 침수되는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룻츠 드레셔 선교사. 기독교교회협의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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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여기서 회중 설교를 하고 어린이 교회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특히 어렵게 사는 여성 교우들과 드리는 가정예배와 공동식사를 좋아했는데 어려울수록 그릇되고 낡은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그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씀으로 위로하였습니다.
초기에는 골목에서 배회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모아 숙제지도와 그림그리기, 노래부르기, 공동체 놀이를 했습니다. 아이들 숫자가 늘어나자 각 대학에 자원교사 모집 홍보를 하고 초등과 중등 ‘공부방’을 만들어 교육계획에 따라 가르치고 책을 모아 ‘열린 책방’을 열었습니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어린이 집’이 만들어지고 큰 교회의 지원으로 노인들이 쉴 수 있는 ‘평안한 집’도 생겼습니다. 경희대 의대, 한의대 학생들의 도움으로 ‘주말진료실’도 개설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주말이면 고궁과 박물관을 찾고 등산과 영화를 관람하는 등 특별활동을 했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아이들의 생각이 자라고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합창단을 조직하여 청소년 합창대회에 참여한 일은 아이들에게 자랑이고 봉사하는 모두에게 큰 보람이었습니다. 가난과 노동으로 지친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돌본 결과입니다..
고인은 한국어에 능통하고 겸손했습니다. 작은자의 말에도 경청하는 친화력의 귀재로 누구나 쉽게 친해졌습니다. 헌신적이고 민주적이어서 다양한 지역봉사 활동에 막힘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팔레스타인에서 제작돤 부활 십자가를 선물하면서 일반교회는 빈 무덤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찾지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교회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고인은 자신의 집에서 커피와 다과를 나누며 실무자들과 소통하기를 즐거워했습니다. 독신으로 비건을 실천하며 검은 운동화와 구식 자전거로 양돈마을에 출입하고 평생 집과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랑의 나눔이 필요한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노동자 인권이 무시되는 곳, 이념과 편견으로 고통당하는 예술인들, 보호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연대하고 지원했습니다. 한국의 민중교회와 독일교회를 자매관계로 연결하여 성직자, 평신도, 청소년이 교류하고 농촌과 산업 현장 등을 견학하며 서로의 사회와 문화를 배우게 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양돈마을 시절 고인이 한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독교교회협의회 제공 |
2001~2016년 독일 서남선교회(EMS) 동아시아 국장으로 재임 때 독일 교회 대표로 네차례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한민족 통일을 위한 일치와 협력운동에 헌신했습니다. 독일 동아시아선교회 도암(DOAM) 의장으로 2017년 중국과 한국을 찾았을 때 다시 한국에 와서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실무자로 일하며 한민족 통일에 보탬이 되기를 열망했으나 폐색증 등 건강 문제로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고인은 2018년 하이델베르크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산소통에 의지하면서도 프라이부르크의 작은 노인 아파트에서 지내며 폐질환자 동우회를 만들어 사랑의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2021년 10월 한독사회문화교류협력증진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미륵상을 받았습니다.
90년대 초 고인과 필자 오용식 목사. 필자 제공 |
지난 성탄절에는 페이스북으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모든 분쟁 지역의 난민·이방인들과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재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는 또 지난달 19일 고 조지송 목사님 평전 영문판 출판기념회에 영상물을 보내어 여성노동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신 조 목사님의 삶이 영어로 번역된 것을 축하하고 이 책이 세계의 많은 노동자에게 전해져서 세상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삶에 큰 용기가 되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루츠 선교사는 한국인 누구에게나 한국인과 한반도를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온몸으로 사랑한 친구로 기억될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늘 기도하고 묵상한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선교사님 참 안식을 누리십시요. (오는 15일 오후 6시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추모예배가 있다.)
오용식/목사·사단법인 잇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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