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직격탄 맞은 튀르키예 남부…여전히 갈곳 없는 주민들
내전중인 시리아는 원조자금 고갈…잔해더미 쌓여도 치울 엄두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일주기를 하루 앞둔 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하타이주에서 한 여성이 지진으로 파괴된 주택 앞에서 쪼그려 앉은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2024.1.5.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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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규모 7.8의 지진이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발생한 지 6일(현지시간)로 꼬박 1년이 된다. 강진으로 튀르키예에선 5만2000명, 이웃 시리아에선 최소 6000명에서 최대 1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명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다. 튀르키예에서만 최소 400만채의 건물이 파손되면서 피해 지역 주민들이 거리로 내몰렸는데 상당수가 1년이 다 되도록 돌아갈 거처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5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유로뉴스에 따르면 튀르키예에서 지진의 상흔이 가장 심하게 남은 곳은 진앙이 위치한 가지안테프 인근 하타이주(州)다. 하타이주의 주도 안타키아는 지진으로 건물의 90%가 파괴됐는데 재건 사업이 지연되면서 40만 인구 중 3분의 1이 도시를 떠난 뒤 돌아오지 못했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상점들은 대부분 컨테이너 가건물에 의존하는 실정이고 남은 주민들도 텐트와 가건물을 일년째 전전하고 있다.
안타키아에서 작은 금은방을 운영하는 오르한 오즈투르크는 이날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주 전 가게 앞 잔해가 치워져 영업을 재개했지만 예전과 같은 활기를 느낄 수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떠날 생각도 해봤지만 고향을 떠나 어디로 가야하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안타키아 주민 세브뎃 돈메즈는 "운 좋게 정부로부터 컨테이너 주택을 지원받았지만 창문 설치공으로 일하던 일자리를 잃었다"며 "상황이 정말 안 좋다.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일주기를 닷새 앞둔 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하타이주에서 한 남성이 지진 희생자 묘역에 무릎을 굽힌 채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2024.2.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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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가족을 여전히 애타게 찾는 이들도 있다. 지진 발생 보름 만에 실종자 수색 작업은 공식 종료됐지만 그사이 어딘가에서 구조됐지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서다. 하타이주의 이스켄데룬에 사는 세마 글렉은 길을 지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매일 아들의 얼굴을 찾아본다고 WP에 말했다. 글렉이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지진피해자 및 실종자 연대협회'(DEMAK) 에 따르면 튀르키예 11개 도시에서 최소 145명이 행방불명 상태다. 튀르키예 정부는 수색 작업 종료에 따라 실종자 집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진으로 워낙 많은 이웃이 숨졌던 탓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주민들도 부지기수다. 세 자녀의 어머니인 세브칸 투르크는 열악한 텐트 생활에도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안타키아 거리에 방치된 수많은 이들의 주검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후 정신적으로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터크는 WP에 "우리의 심리 상태는 엉망진창이다. 작은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패닉 상태에 빠진다"고 호소했다. 지진 당일 산기슭에 있던 그의 자택은 낙석에 맞아 파손됐다.
튀르키예 정부가 약속한 도시 재건 사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오는 3월까지 지진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주택 31만90000채를 공급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주민들은 믿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터크는 정부로부터 컨테이너 주택만 오길 기다리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한 여론을 신속한 재건 공약으로 잠재우며 지난해 5월 대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일주기를 사흘 앞둔 3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도시 알레포 인근 진다레스 마을에서 외벽이 떨어진 건물 앞에서 천막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서성이고 있다. 2024.1.3. ⓒ AFP=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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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 내전으로 치달은 시리아의 상황은 튀르키예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현재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정부 관할 지역과 튀르키예,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군 지역으로 국토가 나뉘어 있다 보니 사망자 집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유엔은 이번 지진으로 최소 6000명의 시리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지만 비정부기구인 시리아인권네트워크는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EU) 이사회의 줄리엔 반스 데이시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국장은 DW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는 지금도 파괴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시리아는 이제 국제사회의 의제에서 밀려났고 자금 지원도 고갈됐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카든 유엔 시리아 인도주의조정관은 DW에 "지난해 시리아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응 계획은 목표액의 38%만 지원됐다"며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래 가장 낮은 지원"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현재 시리아 지역 사회는 활발한 적대 행위, 경제 악화,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시리아는 세계 10대 기아국으로,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1290만명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리아에선 재건 사업은커녕 쌓인 잔해조차 치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히바 자야딘 중동·북아프리카 부문 선임연구원은 DW에 "1년이 지난 지금 시리아의 인도주의적, 경제적 위기는 더욱 악화했다"며 "피해 구조물 상당수가 손길이 닿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일주기를 하루 앞둔 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하타이주에서 마을 주민들이 파괴된 주택 앞을 지나쳐 걷고 있다. 2024.1.5.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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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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