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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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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떠나자 기이한 일…매화 100송이 피던 금둔사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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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 입적과 40년 된 매실나무



■ 국내여행 일타강사

“햐~ 이 맛에 중노릇을 하는 거라.” 순천 금둔사엔 동지섣달에 꽃 피는 매실나무가 있습니다. 음력 섣달에 핀다고 ‘섣달 납(臘)’자를 붙여 금둔사 납월매라 불렀습니다. 겨울 매화 100송이나 피우던 금둔사. 이를 가꾼 큰스님이 지난 가을 입적했습니다. 그리고 올겨울, 금둔사 매화는 꽃을 감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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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에 있는 금전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금둔사 대웅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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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꽃을 보러 다닌 건 올해로 20년째다. 처음엔 소문으로만 알았다. 전남 순천에 가면 낙안읍성 내려다보이는 금전산(668m) 남쪽 기슭에 금둔사라는 작은 산사가 있는데, 그 절집 매실나무가 동지섣달에도 꽃을 피운다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더니 정말 매화가 피어 있었다. 붉은 매화, 홍매(紅梅)였다. 그때부터였다.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과 연을 맺은 건.

40여 년 전 폐허 같았던 금둔사를 일으키고 매실나무 씨앗을 구해 와 이윽고 꽃을 피우게 한 주인공이 지허 스님이다. 금둔사에 들 때마다 스님은 손수 기르고 따고 덖고 내린 차를 내주셨다. 지허는 그 유명한 선암사 동구 차밭을 손수 일군 선사(禪師)다. 인연에도 끝이 있는 것일까. 지허 스님이 지난해 10월 2일 입적했다. 1941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났으니 세수는 82세였고, 1956년 선암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니 법랍은 67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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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촬영한 지허 스님. 한쪽 눈을 다쳐 색안경을 쓰고 있었다. 스님은 지난해 10월 2일 입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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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로 내려간 건 지난달 17일이다. 금둔사는 아직도 어두웠다. 꽃망울 맺힌 나무에서 한두 송이가 겨우 꽃잎을 열었을 뿐이었다. 동짓달에도 100송이 넘게 꽃을 피웠던 금둔사 매화가, 제주도 매화가 86년 만에 가장 이른 개화 소식을 전한 이 겨울에는 피지 않았다. 설마 매화도 스님이 떠나신 걸 알았던 걸까.

2020년 12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았던 시절, 문득 금둔사 홍매가 그리웠다. 오랜만에 지허 스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스님, 매화가 언제 필까요?”

“아직 멀었제. 동짓달은 지나야 확 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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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촬영한 금둔사 백매. 겨울이 다 가야 피던 백매가 올겨울에는 서둘러 피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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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동짓달 하고 열나흘. 금둔사에 들었다. 요사채 앞 매실나무 한 그루가 붉은 기운으로 온통 화사했다. 가지마다 두서너 송이씩, 얼추 100송이 가까이 핀 듯했다.

“나가 야들을 심은 게 35년 전이여. 여태 이렇게 일찍 핀 적이 없었네.”

팔순 앞둔 노스님이 아이처럼 신이 나 말하고 있었다. 엄동설한에 꽃 피운 매화보다 큰스님의 해맑은 얼굴이 더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그 기운을 받아 코로나로 버거웠던 날들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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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에는 금둔사 홍매가 좀처럼 피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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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는 작은 사찰이다. 바로 옆 조계산(887m) 자락에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어 이름도 크게 밀린다. 절은 작아도 내력은 길다. 백제 위덕왕 30년(583)에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제법 번창했었다.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금둔사의 명맥이 끊긴 건 정유재란(1597) 때다. 난리 통에 가람이 전소했다. 이후 오랜 세월 폐사지였다. 1970년대까지 산 아래 주민이 금전산 중턱 절터까지 올라와 밭농사를 지었다.

금둔사를 다시 일으킨 주인공이 지허다. 1979년 금전산 기슭에서 무너지고 부서진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을 발견하고서다. 그 뒤로 스님은 길 닦고 돌 쌓으며 버려진 절을 다시 세웠다. 산 아래 낙안읍성에서 600년 묵은 노거수의 씨앗 한 움큼을 받아와 금둔사 곳곳에 뿌린 건 1985년의 일이다. 그 씨앗 중에서 6개가 살아남아 매운 계절에 꽃을 피운다. 생전의 스님은 “매화가 부처”라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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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의 새 주지 승국 스님. 손민호 기자


생전의 지허는 ‘선농일치(禪農一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농사짓는 게 참선이라는 뜻이다. 60여 년 전 선암사 차밭을 일구기 시작했을 때도 한마음이었을 터이다. ‘선다일여(禪茶一如)’도 지허가 자주 부린 말씀이다. 차 생활이 참선이라는 말이니 수행하지 않으면 차를 만들 수 없다는 경구다. 지허는 참선하는 마음으로 차를 빚었고 농사를 지었고 꽃을 기다렸다.

새 주지로 들어온 승국 스님은 죄라도 지은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스님이 가신 것도, 매화가 피지 않는 것도 다 제 잘못인 듯한 얼굴이었다. 하릴없이 경내를 거니는데 활짝 핀 백매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홍매도 안 핀 금둔사에 백매가 피었다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승국 스님은 “다비식에서 사리 여러 점이 나왔는데, 1주기가 되면 선암사에서 정식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큰스님에 대한 예우다. “말씀을 남기신 게 있느냐” 물었더니 지허 스님의 열반송(涅槃頌)을 보여줬다. 생전의 노스님이 “내가 죽거든 열반송으로 쓰라”고 미리 건넨 글귀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 위에 녹음이 꽃 같고

끓는 물 가운데 흰 연꽃이 활짝 피었네.

지팡이 끝에 걸린 옛 달은 허공을 비추고

하늘 밖에 학 울음소리 길게 떨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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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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