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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강제징용 심리하던 대법원에 행정처 자료 전달···‘참고자료’라 괜찮다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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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나서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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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지난 26일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법원행정처가 일제 강제징용 소송에 외교부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재판 시나리오와 각종 대응 방안 등을 검토한 것이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이 대법원 재판부로 넘어갔지만 이는 단순한 ‘참고자료 전달’이라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 소부가 2012년 피해자들 승소로 판결하자 사법부 이익 도모를 위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위법한 지시를 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다.

이번 재판부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박근혜 정부 외교부 관계자들과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협의한 사실은 인정했다. 2012년 판결을 뒤집으려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야 했는데 대법원이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그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는 게 공소사실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2012년 판결을 뒤집으려는 방침이나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을 기반으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여러 강제징용 소송 관련 문건들도 재판 개입 목적이 아니라고 했다. 법원행정처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위해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 도입을 검토한 문건에 대해 재판부는 “정책법원으로서의 일반적인 재판제도 개선에 대한 선행 검토 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뿐”이라며 재판 개입성 문건이 아니라고 했다.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강제징용 소송의 재판 시나리오, 대응 방안 검토 문건도 판결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단순 검토했을 뿐이라고 했다. 한 문건엔 ‘외교부 측에 절차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피고 측 변호인을 통해 외교부 입장을 담은 각종 서류를 간접적으로 제출하는 방안 가능’이라는 내용이 있다. 다른 문건엔 ‘새로운 쟁점인 손해배상액에 대해 판단 후 환송’, ‘사법자제론을 근거로 원고 청구 기각하되 배상을 위한 재단 설립되는 경우 소멸시효 진행을 막지 않는 방법을 채택해 추가 소송 제기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됐다.

재판부는 이 문건들에 대해 “사법부의 대외관계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절차적 배려 방안을 검토하게 한 것일 뿐”이라며 “그 자체로 재판 개입 문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사법행정적 관점에서 파장 등을 다각도로 예측 분석하면서 각 시나리오별 검토 의견과 전망을 기재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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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지난해 4월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윤석열 굴욕외교’를 규탄하고 대법원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심 신속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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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전략으로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면담 추진을 거론하며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 사건에 대해 청구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기대할 것으로 예상되니 처장이 이 실장을 직접 만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를 피력’이라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검찰은 특정 재판을 청와대의 입법 협조 대가로 삼는 것 자체가 사법행정의 한계를 넘는다고 주장했다.

이 문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상고법원 도입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법 협조를 얻기 위한 새로운 전략 마련과 구체적 설득 방안을 검토한 것”이라며 “재판 개입을 검토한 것은 아니므로 직권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문건 중 일부는 강제징용 사건을 심리하던 대법원의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됐다. 검찰은 재판 개입 의도로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의 쟁점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법원행정처에서 대법원 재판부로 넘어갔지만 ‘참고자료 전달’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보고서 전달 목적은 재판에 개입할 의도였다기보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가능성 등을 검토하던 대법원에 ‘참고자료’로 제공했다고 할 것”이라며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했다. 애초에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ICJ 제소 가능성을 알려준 사람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는데도, 재판부는 자료를 요청한 주체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ICJ 제소 가능성 여부에 대한 임 전 차장의 말을 듣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요청해 자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임 전 차장 지시에 따른 자료 제공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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