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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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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노예 사건' 스님, 누명 벗었다…6년 만에 밝혀진 학림사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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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3일 서울 노원구 학림사에서 주지스님인 덕오스님을 만났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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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찰 노예 사건’ 으로 알려졌던 일이 얼마 전 대법원에서 “오히려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평등권을 실현했다”는 판단을 받으며 반전을 맞았다. 1·2심에서는 주지스님이 장애인을 차별했다며 실형을 선고했던 건이다.

엇갈린 판결은 지난 32년 간 서울 노원구 학림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정반대 해석의 결과다. 사건 당사자와 변호인 그리고 판결문 속 말과 글을 통해 사건을 되짚어 본다.



‘착취와 폭행’ ‘돌봄과 대우’…다르게 쓰인 32년의 기억



1985년 4월, 서울 노원구 수락산 자락에 있는 학림사에 한 청소년이 여기서 지내도 되냐며 찾아왔다. 당시 만 18세였던 A씨는 지적장애 3급으로 다른 질병의 치료 후유증도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도 절에서 맡아주길 바랐다.

“처음에 다른 분들은 받아주지 말자고도 했지만 여기서 받아주지 않으면 이 사회 어디서 누가 받아주겠느냐, 내가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해서 받은 겁니다.” 당시 34세였던 덕오 스님이 A씨를 품었다. A씨는 10년간의 ‘행자’를 거쳐 그 뒤 ‘노전스님’으로 약 20년을 살았다. “노전 스님은 불경을 암송해 각종 예불을 주재했고 신도들도 그를 따랐다”(덕오 스님)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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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석가탄신일 당시 모습. 노전스님인 A씨(빨간 동그라미 왼쪽)가 덕오스님 옆에 앉아있다. 사진은 학림사 신도 등을 통해 수집해 상고심 재판부에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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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마지막 날, A씨는 사무장과 함께 절을 떠났다. 당시 영문을 몰랐던 덕오 스님은 “내 상자(相子·사찰에서 가르침을 받는 제자를 부르는 말, 최근 입적한 자승 스님 유서에도 나온다. ‘큰스님의 대를 이을 여러 제자 중 가장 높은 사람’이란 뜻의 상좌(上佐)도 요즘은 비슷하게 쓰인다.)가 행방불명됐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덕오 스님은 절에서 A씨를 ‘폭행’하고 장애인을 ‘차별’한 혐의로 속세의 법정에 서게 된다. A씨를 처음 만난 지 33년 만의 일이었다.

폭행 재판이 먼저 시작됐다. “일이 느리다는 이유로, 날마다 맞았다”는 게 A씨를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의 말이다. 덕오 스님은 수사 초기부터 최초 공판까지 때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나중엔 그래야 빨리 끝난다는 당시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법정에서 인정했다고 한다.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다.



폭행 인정하자 장차법으로 실형…“월급 줬어야”



이는 나중에 이어진 장애인차별금지법위반 혐의 재판에서 불리하게 쓰였다. “A씨가 한 것은 육체노동일 뿐 ‘울력’이 아니다. 육체노동을 ‘울력’으로 생각했다면 피고인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2년 6월, 1심 법원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불가(佛家)에서는 마당 쓸기, 눈 치우기 같은 일상에서 필요한 노동을 다함께 하는 걸 ‘울력’이라 부르며 수행의 일환으로 여긴다고 한다. 하지만 1심 판사는 지적장애가 있는 A씨는 “울력의 진정한 의미를 A씨가 알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A씨가 이끌었던 예불이나 기도도 ‘급여 미지급 노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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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노예'로 알려진 2019년 뉴스 화면 캡쳐(위)와 상고심에 제출된 텃밭 크기(아래). 보도된 사진은 텃밭2에서 연출된 것이며 작은 텃밭에 불과하다는 게 변호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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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A씨에게 승려로서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의무만을 강조하며 30년 이상 노동을 시키고도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2심 법원에서 징역 8개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사무장(종교인이 아니며 머리를 깎지 않는다)은 월급 주고 A씨에겐 안 줬으니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라 했다.



“장애인 차별했다”는 하급심 깨져…“오히려 장애인 사회참여”



반전은 지난 4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벌어졌다. 대법원은 A씨를 노예 아닌 승려로, 덕오스님은 A씨를 착취한 사람이 아니라 보살핀 사람으로 봤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A씨를 덕오스님이 30년 동안 거주하게 하며 피해자 및 부모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스님으로 대우했다.”

대법원은 “덕오스님이 A씨의 실질적인 보호자로 의식주 비용은 물론 뇌 수술비, 입원비, 진료비, 치아 임플란트 비용, 보험료, 성지순례비 등을 전부 부담했다”며 확정된 폭행 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주장한 범행일시 중 일부는 덕오 스님이 학림사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기간이어서 모순된다”며 고려에 넣지 않았다.

상고심부터 덕오스님을 변호한 오영신 변호사는 판결문 중 “사찰 내 종교적 사역에 비장애인 스님과 같은 지위에서 참여하도록 한 피고인의 조치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이라고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에 오히려 부합한다”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급심과 대법원의 대조적 판결은 ‘장애인도 스님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답변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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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오스님.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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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씨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나.

A : 동작이 느리고 말이 조금 느리지만 머리가 좋다. 일상생활 규율법도 익히고 염불도 책 한 권을 다 외웠다. 기도도 잘 한다. 법당에서 기도를 할 때 염불 박자가 느리거나 빠를 때가 있는데 옆에서 터치만 하면 벌써 알아서 박자를 찾아갈 정도였다. 전화 너머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 스님인지 어떤 신도인지도 다 알았다.

Q : 장애인은 승적을 가질 순 없다고 하는데.

A : 조계종에선 승적에 올리려면 고졸 이상이어야만 된다는 규칙도 있다. 그런 건 각 종파마다 만드는 룰이다. 실제로 스님으로 살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은가. 성호스님(A씨의 법명)은 승적은 없지만 회보에도 노전스님으로 올렸다. 모든 신도들이 다 스님으로 대우해 존경하고, 그가 축원 기도 염원해 준 것을 불자들이 고맙게 생각했다.

Q : A씨는 스님으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나.

A : 제사를 모시게 되면 노전스님과 그 밑에 부전스님이 한다. 노전스님은 큰 행사를 주도한다. 다만 혼자서 할 수는 없으니 집행을 하고 옆에서 다른 사람이 보조적으로 돕는다. 평등성중(平等性中)에 무피차(無彼此)하고 대원경상(大圓鏡上)에 절친소(絶親疎)라는 말이 있다. 평등한 성품에는 너나 없고 본 마음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단 것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은 공동체다.

Q : 조계종 승려 절반은 월급여(보시)를 받는다는데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지 않는가.

A : 이판사판(理判事判)이 절 용어다. 이판은 밥 먹고 공부만, 참선하고 명상하는 스님이고 사판은 우리처럼 행정을 담당하는 스님이다. 보시는 사판에만 해당하는데 모든 사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고, 내 식구 내 상자는 의식주 등 모든 것을 다 해주기 때문에 보시를 따로 주지 않고 외부 스님이 오시면 보시를 드린다.

Q : 수사부터 재판까지 긴 시간이었는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A : 매스컴을 통해 사찰 노예 사건으로 알려졌을 때다. 우리에겐 확인해보지 않고 한 쪽 얘기만 듣고 전국에 뉴스를 내보냈다. 신도들에게 전화가 빗발쳤다. 가까운 신도들은 이것이 다 거짓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저에게 위로를 많이 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절이 말썽 많았다는 절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다고 할 때 너무 가슴 아프고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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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신 법무법인 여의 대표변호사(왼쪽). 오른쪽은 주지 덕오스님.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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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프레임은 한 번 씌워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A : 오영신 변호사=지적장애인에 대한 노동착취란 점에서 염전노예와 비견됐다. 더러운 집, 부실한 음식, 무보수, 폭력행사 등이 딱 맞아 떨어졌다. 상고심부터 참여한 저도 처음에는 ‘좀 때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기록을 꼼꼼히 보니 폭행 사건부터 일시가 맞지 않았다. 제보한 사진도 A씨가 절을 나가기 직전에 사무장과 꾸며 찍은 것이었다.

Q : 이 사건은 사무장이 만들어낸 것인가.

A : 오영신 변호사=이전에 20년 검사 생활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조작된 사건은 드물다. 횡령 문제가 불거진 사무장이 자신을 잘 따르는 A씨를 이용해 주지 스님을 쫓아내려 기획한 것이라 본다. 하급심은 이런 기획을 알아차리지 못 한 채, 지적 장애인은 스님이 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현실에 존재하는 장애인 돌봄의 한 방식인 장애인 스님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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