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원금 절반도 위협…은행권만 2296억 손실
홍콩H지수 한때 5000선 하회…'항셍테크 ETN' 마저 조기청산
중국 정부 증시부양 나섰지만, 상반기 손실만 6조원 육박 우려도
금융당국 12개 판매사 대상 현장검사…2~3월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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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지수(HSCEI)가 연초 하락 추세를 지속하면서 만기를 앞둔 주가연계증권(ELS)의 예상 손실 규모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연초 만기를 맞은 일부 ELS의 손실률은 55%를 넘어섰고 이미 2300억원의 투자금은 손실이 확정됐다. 보다 못한 투자자들은 결국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면서 꽁꽁 얼어붙은 거리로 나섰다.
전일 중국 정부가 372조원에 달하는 증시안정기금을 투입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홍콩H지수를 포함한 중국 증시가 반등했지만, 중국 거시경제 전반에 누적된 문제가 원인이 된 만큼 만기를 앞둔 ELS 투자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지속적인 반등 모멘텀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추종 ELS 상품의 손실이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2296억원(원금 435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실률은 투자액 대비 53%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 이외에 주요 증권사들 손실 확정 규모를 합하면 더욱 커질 전망이다. 1월에만 9200억원 규모의 ELS 상품이 만기를 맞는 만큼 손실 규모는 4500억원을 넘어 5000억원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판매된 ELS 상품 대부분 2021년 1월 홍콩H지수가 1만~1만2000선을 오갈 때 발행된 탓에 손실을 피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ELS의 손실 확정 기준은 상품마다 상이하지만, 가입 후 3년 추종지수가 가입 당시 기준의 65~70% 수준이 돼야 원금손실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녹인(Knock-in)'형의 경우 만기 시점에 추종지수가 통상 가입 당시 기준의 70%를 웃돌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을 수 있지만 70%를 밑돌 경우 하락률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노 녹인(No Knock-in)'형도 가입 당시 기준의 약 65%가 수익 분기점이어서 초고위험 상품에 속한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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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앞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ELS의 규모가 더 크다는 점이다. 2월에는 1조6600억원, 3월에는 1조8200억원, 4월에는 2조5600억원어치 ELS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며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5월과 6월 만기 규모도 각각 1조5600억원, 1조5100억원 규모다. 상반기에만 10조원이 넘는 ELS의 만기가 한꺼번에 돌아오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상반기 ELS 상품 손실 확정 규모가 5조원을 넘어 6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홍콩H지수가 올해 들어 큰 낙폭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 22일에는 장중 5000선까지 내주기도 한 탓이다. 삼성증권이 발행한 '삼성 레버리지 항셍테크 ETN(H)'마저 최근 지수 급락으로 매매거래가 정지,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전일 중국 정부가 2조 위안(약 372조원) 규모의 증시안정기금을 투입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홍콩H지수를 포함해 중국 증시가 2%대 반등을 기록했지만, 이 역시 구조적인 상승 모멘텀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리창 중국 총리가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연기금의 장기자금 투자 확대 ▲위법행위 감독 강화 ▲상장기업 투자가치 제고 ▲자본시장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장 추세를 전환할 만한 특별한 조치는 없어 보인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대부분 판매 비중이 높았던 은행권 가입자로 추정된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지난해 11월 기준 홍콩H지수 ELS 누적 판매액은 총 19조3000억원으로 이중 KB국민은행(8조원), 신한은행(2조4000억원), NH농협은행(2조2000억원), 하나은행(2조원), SC제일은행(1조2000억원)에서 15조9000억원어치가 판매됐다. 투자자들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판매사의 설명을 신뢰하고 가입을 했는데 은행 간 판매경쟁에 희생됐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금융감독원은 자체 태스크포스팀(TF)을 가동하고 판매사를 통해 민원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건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8일부터 불완전판매와 핵심성과지표(KPI) 등에 초점을 맞추고 12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대상 은행은 KB국민, NH농협, SC제일, 신한, 하나 등이다. 증권사는 KB국민, NH농협, 미래에셋, 삼성, 신한, 키움, 한국투자증권 등이 포함됐다. 불완전판매의 경우 고령층을 상대로 한 가입 절차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과도한 판매 경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KPI를 중심으로 한 판매 드라이브 정책도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이번 ELS 상품과 관련한 문제의 핵심은 금융 이해도가 낮은 고령층 가입자에게 얼마나 판매가 됐느냐에 있을 것"이라면서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성과지표 등을 내부적으로 어떤 식으로 통제해 왔는지도 중점 검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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