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집서 웃으며'V'자
우리들도 경각심 가져야
이가희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
연말에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바닷가만 좋은 줄 알았는데 부산역 근처도 볼거리가 많았다. 광복로 패션거리, 그 거리와 이어진 골목들,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 등 사진기 셔터 누르기 바빴다. 항일거리를 지나니 일본 총영사관도 보였다. 그 영사관 건물 지하철 입구 쪽엔 흰색 목도리를 두른 '평화의 소녀상'이 도로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소녀상 주변에서 낯선 언어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20대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 외국인 십여명이 낄낄거리며 V자를 하고 소녀상을 끌어안고, 입맞춤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심지어 민망한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 아닌가! 가방 하나 없는 차림새를 보니 관광객은 아니었다. 외국인 노동자 같았다. 화가 치밀어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필자는 그들에게 "우리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것은 예술 조각품이 아니다." 서툰 영어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한동안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난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겪었던 너무 부끄러운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누구나 필독서처럼 '안네의 일기'를 읽고 자랐다. 안네의 일기는 나치의 네덜란드 점령 기간 숨어 지내던 안네 가족의 삶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기는 안네의 13번째 생일, 안네와 그녀의 가족이 아버지 사무실 건물의 비밀 별관에 숨어들기 직전부터 시작된다. 2년이 넘도록 안네는 그들이 겪는 식량 부족,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긴장, 나치한테 발각될까 두려움에 떠는 모습들을 써내려갔다. 그런데 그런 공포와 불확실성 속에서 안네와 그녀의 가족들은 억압에 맞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 일기는 회복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줬기에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지난 여행에서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의 집'에 들렀다. 그녀와 가족이 잡혀가기 전에 살았던 집(은신처)을 가보니 이렇다 할 간판도 없고 작고 소박했다. 사실 많은 관광객이 모여 있어서 '이곳이 안네 프랑크의 집이구나'라고 눈치챌 정도였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조용히 안네의 집을 사진에 담거나 안내하는 글을 읽고 있었다. 특히 유럽인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도 숙연함을 보였다. 빠르고 짧게 몇 컷 찍는 정도였다. 필자도 한 컷 찍었다. 그곳에선 누구도 치아를 훤하게 드러내놓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우리나라 단체관광객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15분 자유시간을 준다는 가이드의 안내가 끝나자마자 '안네 프랑크'라고 쓴 간판 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V를 그리며 환하게 웃으며 줄지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하트 모양도 하고 "김치"라고 외쳤다. '아, 세상에나….'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일본이 저지른 '일본군위안부'의 상징인 소녀상 앞에서 V자 하고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에 화가 나듯,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증언한 열다섯살 안네 프랑크의 집 앞에서 어떻게 "김치"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잊지 않으려고 세워둔 상징적 조형물에 개념 없이 장난쳤던 그 외국인처럼 우리도 여행 가서 남의 나라 아픔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모욕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저 사진 찍기 바빴을 뿐이라고? 변명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한테 충분한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반면 독일은 달랐다. Vergangenheitsbewaltigung, 즉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사과하고 그 현장을 공개했다.
안네 프랑크와 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의 희생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한 고통의 상징물이나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미래 세대는 이러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승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기억을 먼 역사적 사건이 아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는 살아있는 교훈으로 생생하게 간직해야 할 책임이 있다. 시간이 지났다고 자꾸 옅어지면 안 된다.
이가희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