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VCHA는 북미 최초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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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엔터테인먼트는 26일 새로운 걸그룹 VCHA(비차)를 공개한다.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만 16.7세로, 순수 한국인은 없다. 미국 대형 음반사 리퍼블릭 레코드와의 합작 오디션을 통해 캐나다에서 온 맏언니 카밀라와 한·미 이중국적인 2009년생 막내 케일리, 미국인 렉시·켄탈·사바나·케이지를 선발했다. 이들은 영어로 노래할 뿐 아니라, 비하인드 영상 등 자체 콘텐트에서도 영어를 사용한다.
DR뮤직 소속의 블랙스완은 한국인 멤버가 한 명도 없는 K팝 걸그룹이다. 2020년 처음 데뷔했을 땐 한국인 멤버가 있었지만, 멤버 재편을 거치면서 지금의 4인(파투·앤비·가비·스리야) 구성이 됐다. 벨기에, 미국, 브라질·독일, 인도 등 각각 다른 문화권에서 온 멤버들은 공통의 꿈인 ‘K팝’으로 뭉쳤다. 한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며, 대부분의 자체 콘텐트에서 한국어를 사용한다. 최근엔 김치 주제의 웹 드라마를 유튜브에 올렸다.
그룹 블랙스완은 합숙 트레이닝을 거치는 등 한국의 K팝 시스템을 그대로 따랐다. 사진 DR뮤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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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과정도, 사용 언어도 다르지만 비차와 블랙스완은 모두 K팝 그룹이다. K팝의 기본적인 요소인 춤과 노래를 동시에 소화하는 것은 물론, 뮤직비디오·안무 영상 등 비주얼 퍼포먼스에도 공을 들인다. 소속사의 밀착 관리를 받는 것도 K팝만의 특징이다. 블랙스완 멤버들은 “한국인 뿐 아니라 누구나 K팝을 할 수 있다. 차세대 K팝은 더 세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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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에 ‘K’(코리아)가 없다
차준홍 기자 |
JYP는 비차 외에도 일본 현지화 보이그룹인 NEXZ(넥스지)를 선보인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는 오디션을 통해 일본 현지화 그룹인 NCT WISH(엔시티 위시)를 만들었다. 하이브는 올해 2분기 한국인이 한 명 뿐인 6인 구성의 미국 현지화 걸그룹 KATSEYE(캣츠아이)를 공개한다.
그룹 넥스지는 JYP의 일본 오디션 '니지프로젝트 시즌2'를 통해 결성됐다. 사진 JY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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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니쥬는 JYP의 일본 오디션 '니지프로젝트 시즌1'을 통해 결성,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JYP |
NCT WISH는 2월 21~22일 도쿄돔에서 열리는 'SM타운 라이브 2024 SMCU 팰리스 @도쿄'에서 데뷔한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
그룹 캣츠아이와 포즈를 취한 존 재닉 게펜 레코드 회장(왼쪽)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오른쪽). 사진 방시혁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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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을 두고,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CCO(최고 창의성 책임자)는 K팝이 발전의 3단계(K팝 3.0)에 들어섰다고 봤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1단계, 다국적 멤버가 한국어 혹은 외국어로 노래하는 2단계를 거쳐 현지 가수가 현지 언어로 활동하는 3단계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K팝 3.0’ 시대다. 이렇게 되면 K팝 그룹들이 한 국가에서 성공을 거둔 뒤 다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순서가 아니라, 잘 만든 콘텐트 하나로 글로벌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권 위주였던 K팝 소비의 쏠림 현상도 사라지는 추세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내 음반 수출 국가는 2017년 78개국에서 2020년 114개국, 2021년 148개국 등 매년 늘어나고 있다. 몰디브, 몰타, 벨라루스, 부탄, 스리랑카, 아이슬란드, 알제리, 오만, 파키스탄 등에도 K팝 음반이 수출됐다. "K팝에서 K를 떼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온 하이브 방시혁 의장은 “그래야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넓은 소비자 층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의 구조로 계속해서 가면 분명 성장에 제한이 생긴다”고 밝혔다.
‘2022 케이팝 세계지도’를 만든 스페이스오디티 관계자는 ″인도는 과거 순위에 없는 K팝 불모지였으나 3년 사이 중요한 K팝 시장으로 인정받으며 4위로 새롭게 등장했다″고 말했다. 사진 스페이스오디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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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3.0’엔 K팝이 하나의 장르로서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K팝이 지역적 한계를 깨고 전 세계에서 고루 듣는 음악이 됐다. 매출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장르”라고 말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빌보드와 같은 글로벌 차트에서 한국 출신 K팝 아티스트와 다른 나라의 K팝 아티스트가 경쟁하는 날을 머지않은 미래에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K팝 그룹 내 외국인 멤버의 증가는 저출산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는 “출생아 수가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춤과 노래에 재능 있는 친구들을 찾고 그 안에서 또 데뷔 경쟁을 해야 한다. 점점 해외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진영 JYP CCO는 K팝 3.0에 들어서면서 ″국경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진 tvN '유퀴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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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K팝, 산업적 고민 가져야
한편, K팝의 글로벌 외형 확대도 중요하지만, 산업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십 년간 음원 정산을 받지 못해 소속사와 법적 분쟁을 벌인 가수 이승기, 과잉 경호로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보이그룹 보이넥스트도어 같은 사례가 더는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0대 청소년에 가혹한 K팝 육성 시스템’이라는 외신의 비판도 귀 담아 들어야 한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2022년 자체 콘텐트에서 “쥐어 짜냈다”며 K팝 아이돌로서 10년 활동의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모 기획사 신인개발팀 관계자는 “사실 K팝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경쟁이 치열하지 않나. 다만 청소년이 많이 종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연습생 때부터 정신과 상담을 지원하는 등 가수의 건강 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MBC PD 출신인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은 “K팝은 우리만 보는 콘텐트가 아니라 글로벌하게 소비되는 콘텐트가 된 만큼 인종·젠더 같은 보편적 문제도 신경 쓰면서, 자기 복제에 빠지지 말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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