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 예고편 중. 주인공 미키 역의 로버트 패틴슨이 재생탱크에서 깨어나고 있다. |
워너브라더스가 ‘미키17′의 개봉일을 2024년 3월29일로 발표한 것은 지난해 12월초입니다. 그래서 최근 대부분의 매체에서 올해 기대작을 소개하면서 이 날짜로 보도를 했는데요, 사실 지난해 말부터 “개봉 날짜가 변경될 것 같다”는 말이 솔솔 나왔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할리우드 파업의 여파입니다. ‘듄2′가 대표적(작년 11월에서 올해 2월)이죠. 또 한 가지. 오는 5월 칸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전 세계 최초 공개)로 선보일 거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기생충’도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며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세를 몰아 이듬해 오스카를 가졌죠. 워너 발표에 따르면, ‘미키17′을 공개하려던 3월29일에는 ‘고질라와 콩: 새로운 제국’(Godzilla x Kong: The New Empire)이 개봉합니다. 원래 4월12일 개봉이었는데 2주 당겼네요. 예고편을 보니 어마무시하게 큰 고질라와 역시 어마무시하게 큰 킹콩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등장하는데 별로 무섭진 않았습니다. 괴수 영화일수록 스토리가 중요한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가장 궁금한 것. ‘미키17′은 언제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가장 핵심인 부분인데 워너에서 정작 그 부분은 입을 다뭅니다. 소셜미디어에는 “누가 고질라 보고 싶다고 했냐, 봉을 보여달라” “안돼, 안돼, 안돼” 등등 불만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는데요. 과연 칸에서 공개할지 어떨지. 속보가 나오면 레터 독자 여러분을 위해 최대한 빨리 알려드릴게요.
‘미키17′은 봉 감독이 ‘기생충’으로 우주 정복, 아니 오스카 정복을 하고 5년 만에 나온 차기작인데요.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 어떤 작품일지 엿볼 방법이 있습니다. 원작이 있거든요. 2022년 발표된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소설 ‘미키7′입니다. 영화와 원작이 제목 숫자만 달라요. 국내에선 황금가지에서 발간했습니다. 400쪽밖에 안 되는 데다 술술 읽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일어서실 수 있습니다. 궁금하실 레터 독자분들을 위해 먼저 읽어봤는데요, 아마도 영화에선 많이 각색이 될 것 같지만, 책을 읽어보실 분도 있을 듯 해서 기본 설정만 살짝 말씀드릴게요.
영화 '미키17'의 원작소설인 '미키7'의 일러스트레이션. 오른쪽 아래가 복제인간 주인공 미키고요, 뒤쪽 괴생명체가 외계 행성에 사는 크리퍼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에서 이런 이미지들을 어떻게 구현할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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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부터. ‘미키17′이 무슨 뜻인가. 미키는 주인공 이름이고, 17은 복제된 숫자입니다. 영화에선 17번째 미키, 책에선 7번째 미키가 주인공입니다. 복제인간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고 불리는데요, 단어 뜻(‘소모품’)만 봐도 아시겠지만, 쉽게 말해 마루타에요. 예를 들어 엄청난 방사능에 노출돼야 하는 작업에 투입되는 거죠. 위험해서 아무도 안 하거나 못하는 일을 시키고, 그 일을 하다 죽으면 미리 저장해둔 생체 정보와 기억을 주입해서 이전의 미키와 똑같은 복제인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로버트 패틴슨이 눈을 번쩍 뜨는 장면이 새로운 미키가 재생탱크에서 태어나는 모습인 것 같아요. 책에선 ‘재생탱크에서 나와 정신이 들 때는 지독한 숙취와 함께 살점이 떨어지고 관절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고 묘사하네요.
책에서 7번째 미키는 외계행성 탐사에 나갔다가 죽을 뻔 해요. 다행히 외계 괴생명체의 도움으로 살아서 기지에 귀환하는데, 자기 방으로 가보니 이미 미키8이 복제 완료된 거죠. 여기서 문제 발생. 복제인간은 동시에 2명이 존재하면 안 되거든요. 과거에 어떤 소시오패스 천재 과학자가 본인의 복제인간을 마구 만들었다가 전쟁이 벌어진 일이 있어서요. 책에선 ‘중복된 익스펜더블은 아동 납치범이나 잔혹한 연쇄살인범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고 써있습니다. 미키7과 미키8의 앞날은 어찌될까요.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나 소설은 많죠.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들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소재가 없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테세우스의 배’ 비유도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언급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왕이 타고 떠난 배죠. 이 배가 철학사에서 유명해진 것은 구조주의의 핵심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자, 배를 구성하는 부품이 100개 있다고 칠게요. 부품을 하나씩 차례로 바꿔서, 긴 세월이 지나 100개의 부품을 모두 바꿨다면. 이 배(배1)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리지널 부품이 하나도 없는데도?) 하나씩 바꾼 부품을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서 다른 배를 만들었다면(배2),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둘 중 어떤 게 진짜 ‘테세우스의 배’일까요? 아니 ‘테세우스의 배’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미키7′의 미키도 같은 고민을 합니다. 나, 미키7은 과연 미키1과 같은 존재인가. 미키1의 첫 키스를 기억하고, 엄마를 마지막 본 날도 기억하는 나는 미키1인가 아닌가. 책에선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서 가볍게 언급만 하고 지나갈뿐 심각하게 다루진 않습니다. 전 원작의 결말이 좀 심심하다 싶었습니다. ‘이 주제로 이렇게 끝내고 마네?’ 싶었어요. 그래서 더욱 봉 감독님이 어떻게 다르게 보여주실지 기대됩니다. 외계 괴생명체가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될지도 궁금하고요. 봉 감독의 ‘괴물’보단 좀 더 상상력이 가미된 이미지면 좋을텐데요.
‘기생충'의 성공 이후 봉 감독에게 차기작의 무게감은 어느 때보다 크지 않을까 싶네요. 그 중압감을 이기고 멋진 작품을 보여주시기를 기대하며~. 곧 다음 레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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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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