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18 재판 결과 넘어서지 못해" 평가
시민 붙잡아가는 5·18 계엄군 |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5·18 진압 작전의 실질적인 결정권자로 전두환을 지목했지만, 집단 발포와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최종 책임자로 확정하지는 못했다.
시간을 거슬러 1995∼1997년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을 연상케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1990년대 당시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전씨를 발포 명령자이자 책임자라고 판단하고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했다.
전씨가 지시한 자위권 발동이 진압 현장에서는 발포 명령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따라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방어적 차원의 자위권 발동을 지시한 것만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자위권 발동으로 발포가 이뤄졌으나 무고한 시민이나 항거 불능 상태인 시위대에게까지 총격하라고 지시하거나 암묵적으로 허용한 증거가 없다는 취지였다.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서도 작전을 강행한 1980년 5월 27일 최후 진압 작전에 대해서만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했을 뿐이다.
결국 최후 진압 작전 이전(5월19일~26일)의 발포 행위는 내란죄의 하나일 뿐 내란목적살인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동소이한 증거와 정황, 진술을 놓고 1심과 2심 판단만 달라진 것이다.
책임자 규명을 위해 4년여간 조사한 5·18 조사위 실무진은 당시 1심의 판단과 유사한 결론을 내렸다.
특히 실제 진압 현장에서 이뤄진 계엄군의 총격은 자위권 범위를 넘어선 행위를 다수 확인했다.
저격수를 배치해 시민군을 조준 사격하거나 민가에 들어가 무고한 주민을 사살한 행위 등이었다.
조사위 실무진은 자위권 발동을 발포 명령으로 받아들인 계엄군이 방어와 무관한 총격으로 시민을 사살했다면 자위권 발동을 지시한 전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여야 추천 인사 9명으로 구성된 조사위 전원위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진상규명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계엄군의 과잉 총격이 전씨의 책임이라는 연결고리가 될만한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2심 재판부의 논리와 유사한 전원위 판단 결과는 과거 재판을 넘어서지 못한 부실 규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5·18 관련 사건을 담당했던 한 변호사는 "재판장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명백한 증거가 없더라도) 여러 정황 증거를 토대로 충분히 유죄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며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증거가 없는 사안이라면 청문회라도 열어서 국민들이 누구의 책임인지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조사 결과와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한 이유까지 보고서에 모두 담아 국민들에게 공개할 것"이라며 판단을 맡겼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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