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경제부 차장 |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로 근로자가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안전 관리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처하도록 책임을 묻는 법이다.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건설 공사 금액 50억원 이상인 사업장에 우선 적용됐다. 이달 27일부터는 2년 유예기간이 끝나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중대재해법 개정을 통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적용 2년 추가 유예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지난달 3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중대재해법 개정 처리방안에 합의한 바 있다. 뒤이어 정부는 지난달 27일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해 노동계와 야당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대 여당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행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국회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시행 전까지 추가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재 분위기로는 우선 시행 후 여야가 다시 논의하는 쪽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정부·여당만 바라보고 있던 경제계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중소기업중앙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6단체는 지난 9일 공동성명을 내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이 12월 임시국회에서 끝내 처리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을 표한다"고 했다. '참담함'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썼을 만큼 경제계 상황은 절실하다.
정부가 요구하는 안전 전문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절규의 한숨을 내뱉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은 "안전인력을 구하려고 해도 대기업이 이미 다 선점해 사람을 구할수가 없다. 감당하기 힘든 고액연봉을 주고 모셔 올 수야 있겠지만, 직원들의 사기는 어쩌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제 원망의 화살은 정부·여당으로 향하는 분위기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무엇보다 전략이 잘못됐다. 국회 의석수 절반을 넘는 거대 야당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안일하게 대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김건희 여사 특검 논란, '노란봉투법'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으로 여야 간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강경 대응보다는 야당 설득에 좀 더 힘을 쏟았어야 했다. 야당도 이번 건에 대해서는 대놓고 반대하진 않았다.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중대재해법 개정안 동의를 위해 내건 3가지 전제 조건(정부 사과·정부 재정 지원·경제단체 약속)도 어찌보면 정부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야당은 정부·여당이 한발 물러나 양보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번 2년 추가 유예 이후 더이상의 연장 논의는 없다는 확답도 듣고 싶었을 것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에 정부 사과가 빠진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하루 전 입장문을 내고 "법 시행을 앞두고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갖추고자 적극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취약분야 중심으로 준비와 대응이 부족한 상황임을 인정했다"고 나름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사과라기보다는 치적 홍보에 가까웠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시행이 이제 정말 '코앞'에 다가왔다. 남은 시간은 정확히 17일이다. 여야 합의 후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얼마든지 가능한 시간이다. 이번 법 개정이 여야 극단 정치의 '희생양'이 되선 안 된다.
오는 4월 10일 총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정대로 법 시행이 이뤄지면 불리한 쪽은 여당이다. 하루빨리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j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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