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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패권 시대에는 초격차 기술력이 국가 경제와 안보를 결정짓고, 이 같은 기술은 사람을 통해 완성됩니다. 인공지능(AI)이 산업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있는 지금 초격차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융합형 기술 인재 육성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충우 기자 |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은 갑진년 새해를 맞아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이종 산업 간 영역이 파괴되는 '경계 소멸(빅블러·Big blur)' 현상이 심화되고,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IITP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연구개발(R&D) 과제를 기획·관리·평가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매년 평균 1조4000억원 이상의 정부 R&D 예산을 집행하고 ICT 전반에 걸친 연구와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외 ICT 관련 기술, 산업, 시장에 대한 동향을 분석·전망하고, 개발된 기술을 사업화로 연계하는 것까지 ICT 분야 R&D의 전(全) 주기를 관리한다. 주요 미션은 기술 혁신을 위한 R&D와 인재 양성으로 압축된다.
전 원장은 "우리와 경쟁하는 주요 선진국들은 AI 반도체, 양자 등 글로벌 패권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첨단기술 부문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대체 불가능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기술 경쟁의 승패를 판가름하기 때문에 초격차의 파괴적 혁신을 목표로 하는 R&D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1년 1월부터 IITP 수장을 맡고 있는 전 원장은 최근 3년 새 전 세계가 기술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 같은 변혁의 시기에 '공세적인 R&D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충격,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그리고 챗GPT 등장으로 촉발된 AI 대중화 등 전대미문의 현상을 지켜보면서 위기 속 기회를 엿봤다"며 "우리가 R&D 지원 체계를 '목표 달성' 중심으로 탈바꿈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IITP는 현재 R&D 과제를 △임무 중심 △기술 축적 △사회문제 해결 등으로 구분해 지원하고 있다.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 각 부문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임무 중심형 R&D는 처음부터 확보해야 할 구체적인 기술 목표를 세우고, 기술혁신이 민간 투자와 사업화로 이어지게 하는 성과 프로세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 축적형 R&D는 연구의 지속성을 보장해주면서 기술을 둘러싼 지식과 경험의 축적 자체를 목표로 한다. 아울러 사회문제 해결형은 국민 실생활 문제를 기술로 풀어내는 지원을 의미한다. 불법 딥페이크 콘텐츠 적발 기술, 혼합현실(MR)을 이용한 치매 재활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예다.
새해 IITP는 AI 반도체, 양자, AI·데이터, 5G·6G, 사이버 보안, 소프트웨어(SW)·자율주행 등 디지털 혁신기술 분야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올해 전체 예산 1조3917억원을 투입해 디지털 중심 국가혁신과 글로벌 중추 국가 도약을 위한 핵심 디지털 정책 수립을 주도적으로 지원한다. 이 중 8814억원을 기술 개발, 3594억원을 인재 양성에 투입한다. 전체 관리 예산의 89%를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에 쏟아붓는다는 의미다.
전 원장은 "현재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쟁 환경과 한정된 자원을 고려해 패권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기술 분야를 선정했다"며 "기술 개발에 대한 예산 투입 규모는 2021년부터 3년 동안 3조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전 원장은 사업의 또 다른 축인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IITP가 집중 지원하고 있다. 그는 "선택과 집중, 초격차 혁신을 꾀하는 R&D 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그 밑바탕에 우수한 기술 인재가 포진해 있어야 한다"며 "인재가 인재를 끌어당기고, 기술과 경험이 누적되는 인재 양성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고자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 세계에서 통하는 기술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국제 협력 강화에도 터를 닦았다. 전 원장은 "갈수록 기술이 복잡해지고 첨단화되면서 혼자보다는 각자의 전문영역을 통합하거나 연계할 때 좋은 성과가 나오는 기술 융합·협력 연구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며 "양자, AI 등 디지털 분야의 경우 글로벌 공동 연구를 추진하기에 적합한 요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IITP는 2022년부터 영국(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사우샘프턴대), 캐나다(고등연구재단·토론토대) 등 해외 주요 연구기관·대학과 R&D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교육과정(토론토대 AI융합 교육과정)도 개설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전 원장은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해외 기술 선도국과 협력을 추진해 우리나라의 강점은 더욱 보완해 발전시키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글로벌 리더십 제고를 위해 디지털 6대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국제 공동 연구에 나서는 등 글로벌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비학위 과정을 통한 IT융합 고급 인재 육성 프로그램 가동 △신기술 분야 대학원 신설 및 확대 지원 △군 장병 대상 소프트웨어·AI 교육 강화 등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원할 계획이다.
전 원장은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의 일환으로 2026년까지 최정예 AI 전문인력 1000명을 비롯해 AI·SW 산업인력 5만명을 키울 계획"이라며 "단순히 첨단기술을 개발·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실력의 뿌리가 탄탄한 기술 인재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 원장은 올해 '온디바이스 AI'를 중요한 화두로 지목했다. 그는 "AI 경량화와 반도체 성능 혁신은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 자체에서 AI가 구동되는 '온디바이스 AI'라는 새로운 디지털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AI 서비스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서비스 지연과 정보 유출 가능성 같은 한계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온디바이스 AI는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고 사용자에 최적화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대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에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중심으로 AI 산업화가 진행됐다면 올해는 스마트폰과 PC·가전 등 다양한 기기에 탑재돼 맞춤형 AI 기술을 선보이는 소형 AI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챗GPT 등장을 계기로 생성형 AI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서비스 구동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하는 'AI 반도체'도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전 원장은 "현재 초거대 AI에 주로 이용되는 반도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인데 애초 그래픽 처리 용도로 개발돼 음성이나 텍스트 기반 데이터를 처리하면 전력 소모가 많아 효율이 낮다"며 "AI 연산에 최적화된 시스템 반도체인 신경망처리장치(NPU)를 둘러싼 개발 경쟁이 한층 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2년 444억달러(약 57조8000억원)에서 2027년 1194억달러(약 155조원)로 5년 새 2.6배가량 커질 전망이다. 2030년에는 시스템 반도체 중 30% 이상을 AI 반도체가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 원장은 일상의 모든 곳이 AI 서비스가 경쟁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콘텐츠는 AI 활용 효과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라며 "음악·이미지까지 손쉽게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서비스 덕분에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 원장은 SW 가치가 제고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로봇과 자율자동차 같은 모빌리티 산업을 중심으로 SW 가치가 부각될 것"이라며 "특히 미래형 자동차는 SW를 통해 자율제어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서비스 플랫폼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성배 원장
△1965년 군산 출생 △1990년 연세대 행정학 학사 졸업 △1992년 서울대 행정학 석사 졸업 △1998년 미국 콜로라도대 정보통신공학 석사 졸업 △1990년 행정고시 제34회 합격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 국제협력관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 △2021년 1월~ 정보통신기획평가원장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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