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값 부담… '2,000원 공깃밥' 등장
'슈링크플레이션'에 고기 중량도 줄어
업주 "안 오른 게 없어… 인상 불가피"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 광고물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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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김모(31)씨는 최근 서울 용산의 한 고깃집에서 일행들과 연말 모임 후 계산을 하려다 깜짝 놀랐다. 3명 식사비가 20만 원이 넘게 나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1인분 양이 너무 적어 시키다 보니 7인분이나 됐다"며 "물가도 올랐지만 양도 줄어든 것 같아 외식하기 겁난다"고 전했다.
외식 물가 상승과 맞물려 가격 대신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에 시민들의 외식 부담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물가 상승으로 가격이 올랐는데 식품 정량마저 줄어 외식비 상승 체감은 더 커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은 1.2% 올랐지만, 외식 물가 상승률은 6.0%를 기록했다.
식당 20곳 중 1만 원 이하는 단 2곳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일대 식당 20곳을 둘러보니 국밥·설렁탕 등 점심 평균 가격대는 1만2,000~1만3,000원이었다. 한정식이나 한상차림은 대부분 1만5,000원에서 2만 원 사이였다. 1만 원 이하의 메뉴가 있는 식당은 단 2곳(10.0%)에 그쳤다. 1만 원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직장인 오모(29)씨는 "식대 1만3,000원으로도 점심 한 끼 해결할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며 "식비가 오르니 당장 물가 상승이 확 와닿는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모(30)씨도 "예전엔 돈가스 정식이나 칼국수 등이 1만 원 이하였는데 요즘엔 돈가스 정식이 1만2,500원이다"며 "이름만 '옛날 돈가스'이고 가격은 예전보다 많이 올랐다"고 푸념했다.
지난달 14일 서울 시내 한 식당 앞에 있는 메뉴판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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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백반집 가격도 일제히 오르고 있다. 식당들은 쌀과 채소 등 원재료 가격이 올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의도의 한 백반집은 가정식 백반 가격을 9,000원에서 1만 원으로 최근 인상했다. 인근에서 최저가 수준으로 꼽히던 한식뷔페도 지난달 1인분에 1,000원을 인상했다. 뷔페를 운영하는 A씨는 "코로나19로 어려울 때도 최대한 안 올리고 버티다가 쌀값이 체감상 40% 가까이 오르면서 어쩔 수 없이 8,500원을 받게 됐다"며 "뷔페인데 가격을 더 올리면 손님들이 안 올까 봐 걱정스럽지만 적자를 내면서 장사를 할 순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고기 1인분 200g→150g로 줄어
최근 5년간 서울 시내 음식점 삼겹살 1인분 가격. 그래픽=신동준 기자 |
고깃집들은 가격은 올리고 용량은 줄였다. 서울 마포의 한 고깃집은 삼겹살 1인분 가격을 1만3,000원에서 지난해 10월 1만6,000원으로 23%나 올렸다. 업체 측은 "돼지고기 도매 가격뿐 아니라 채소와 반찬, 양념 등 고기와 함께 제공되는 신선식품 가격이 오르면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했다"고 했다.
서울 시내 고깃집 한우 1인분 가격도 4만 원을 훌쩍 넘는다. 한 고깃집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른 영향이 크다"며 "과거랑 같은 등급이면 가격이 오르고, 과거랑 같은 가격이면 고기 등급이나 양을 줄여 수지를 맞추고 있다"고 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가격정보 종합포털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음식점 삼겹살 1인분(200g) 평균 판매 가격은 2022년 1만8,004원에서 지난해 1만9,211원으로 1년 만에 6.7%(1,207원)가 올랐다.
'1인분에 200g' 불문율도 깨졌다. 3일 서울 시내 고깃집 10곳을 가보니 같은 부위여도 가게마다 1인분 중량이 130g에서 180g까지 다양했다. 삼겹살과 목살 등 구이용 부위보다 항정살, 토시살 등 특수 부위일수록 용량은 더 줄었다. 한 음식업체 관계자는 "1인분에 200g으로 정해진 게 아니다 보니 가격을 맞추려 양을 조절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고기 원가에서 도매상, 가공 과정을 거치면 최종 납품을 받을 때까지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며 "게다가 상차림이 차지하는 금액, 인건비, 임대료 등이 전부 오르는 등 변동이 크다 보니 고깃집들이 가격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깃밥 1,000원'도 옛말이 됐다. 최근 공깃밥 가격을 2,000원으로 올린 음식점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서울 강남과 여의도 등에는 공깃밥 한 그릇이 2,000원인 음식점이 꽤 많다. 직장인 정모(40)씨는 최근 강남 한 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공깃밥 추가 비용 2,000원을 냈다. 정씨는 "예전에는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공깃밥은 포함돼 있었는데, 이제 따로 시켜야 하고 가격도 오른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도시락 싸고, 구내식당 가고, 점심 구독하고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양꼬치 전문점에서 공깃밥을 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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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오르고 양은 줄면서 서민들은 식비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연말에 한 프랜차이즈 훠궈집을 방문한 강모(30)씨는 "소스나 재료를 따로 시켜야 하고, 고기 양이 모자라 추가했더니 2명이 먹었는데 음식값이 10만 원이 넘었다"며 "식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당분간 회사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한 끼에 6,900원인 '점심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도 적지 않다. 직장인 이모(38)씨는 "일주일에 세 번은 구독 서비스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며 "외식비를 아끼기 위한 자구책이지만 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42)씨는 "평소에는 회사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최근에는 구내식당에 자주 가고 있다"며 "푸짐하게 먹기는 어렵지만 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다"고 전했다.
외식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식비 부담으로 소비자들이 먹는 방식을 바꾸는 등 소비 행태가 바뀌고 있다"면서도 "고물가가 지속되면 소비가 더 위축되고 내수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 경제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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