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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물가와 GDP

[이승훈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고물가 속 생존 위한 일본인들의 소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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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년여 만에 업계 1위에 올라선 일본 초저가 무인 헬스장인 ‘초코잡’. 월 회비가 3만원 정도로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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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던 일본인들에게 최근 2~3년은 고통의 시간이 되고 있다. 2023년에도 연평균 3%가량 물가가 올랐고, 2024년에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금리를 통한 양적완화 정책을 이어가면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데다, 에너지 가격 등이 크게 오르면서 서민들의 지갑을 쥐어짜고 있다.

문제는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물가 상승분 이상을 임금에 반영하도록 각 기업에 강력히 요청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임금 인상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가 인상분을 반영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1년 넘게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중이다. 일본인이 근 30년 이상 경험하지 못했던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를 반영한 새로운 소비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지만, 꼭 필요한 지출에 대해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꼼꼼히 따지는 알뜰한 소비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월 3만원에 이용하는 ‘편의점 헬스장’
‘피트니스 천국’인 한국 못지않게 일본인도 운동을 열심히 하다. 아침저녁으로 거리를 뛰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동네 곳곳에서 피트니스센터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는 ‘초코잡(ChocoZAP)’이라는 피트니스센터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22년 7월 문을 열었는데, 1년여 만에 1000개 점포, 회원 수 100만 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써냈다. ‘편의점 헬스장’을 표방하는 이곳은 한 달 요금이 우리 돈으로 3만원가량인 3278엔(세금 포함)에 불과하다. 샤워실, 사물함, 운동복 등을 없애면서 경쟁 피트니스업체보다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춘 것이다. 여기에 피트니스센터를 싸게 이용하려면 최소 6개월, 통상 1년을 계약해야 하는 우리와 달리 초코잡은 한 달씩 이용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3만2780엔을 내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연간권 상품이 나왔지만 기본은 월 단위 계산이다. 또 24시간 365일 운영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트레이너나 접수직원 등 상주하는 인력이 없이 무인으로 운영돼서 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내부의 트레이닝 기계는 트레드밀과 초보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 위주로 구성돼 있다.

맛만 문제없으면 싼 제품이 먼저
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볼 때 제일 민감하게 살피는 것 중 하나가 ‘유통기한’이다. 같은 가격이라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보다는 되도록 날짜가 여유 있게 남아 있는 제품을 고르려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우리의 유통기한에 해당하는 것을 일본은 두 가지 종류로 사용하고 있다. ‘쇼우히키겐(消費期限·소비기한)’과 ‘쇼우미키겐(賞味期限·상미기한)’이 바로 그것이다.

소비기한은 우리의 유통기한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미개봉 상태에서 보관기준을 준수했을 경우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는데, 이 기간을 넘어서면 음식물 섭취를 권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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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다가오는 식품을 염가로 판매하는 이색 슈퍼마켓 ‘마루야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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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마트에서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벤또)을 판매하는데, 판매 도시락의 대부분에는 소비기한 날짜가 적혀 있다. 삼각김밥이나 회, 초밥 종류 등도 비슷하다. 이 기간을 넘어설 경우 되도록 먹지 말아 달라는 의미다. 반면 상미기한은 약간 의미가 다르다. 이는 미개봉 상태에서 잘 보관했을 때 ‘맛’이 변하지 않는 기간을 의미한다. 즉 상미기한을 넘어서도 맛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먹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과자 종류와 컵라면, 일부 유제품 등에 이러한 상미기한이 적힌다. 상미기한의 경우 이 기한을 넘긴 제품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

예를 들어 상미기한이 2024년 1월 10 일인 제품의 경우, 본인의 판단에 따라 1월 15일까지 먹을 수도 있고, 2월 10일에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다소 달라진 맛은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 이를 이용한 마트가 현재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마루야스(マルヤス)’라는 이름의 이 마트에는 소비기한이 임박한 제품과 상미기한이 넘어선 제품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기한이 임박한 초밥 도시락의 경우 대부분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판매한다. 신선 채소의 경우 10엔, 20엔의 가격표가 붙은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상미 기한이 지난 가공품의 가격은 더욱 놀랍다. 개당 500~600엔인 통조림이 4개 세트로 묶여서 500엔,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맥주는 개당 29엔에 판매되기도 한다. 이 맥주 24캔 한 상자 가격도 696엔에 불과하다. 마루야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일부 대형 할인점에서도 이러한 판매전략을 일부 사용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에게 값싸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편의점서 즐기는 저렴한 소비
‘편의점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고물가 속 생존을 위한 소비에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우리의 ‘가성비’에 해당하는 말로 ‘코스파(コスパ)’를 쓰고 있는데, 코스파 제품을 찾기 위해 편의점에 방문하는 것이다.

올해 히트 상품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끈 화장품이 일본 3대 편의점 중 하나인 로손에서 판매한 ‘&nd by rom&nd(앤드바이롬앤)’이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와 공동으로 개발해 립스틱, 립글로스, 쿠션 등을 선보였는데,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일본 전역에서 판매 시작 2주 만에 무려 65만 개가 판매됐을 정도다.

성공적 판매의 비결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우선 저렴한 가격. 코스파를 원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경쟁사 제품 대비 20~30% 저렴한 가격이 책정됐다. 여기에 한국 화장품을 좋아하는 젊은 층의 기호에 맞게 제품 개발과 디자인 등을 한국 화장품 브랜드와 함께하면서 품질에 대한 믿음을 줬다.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코스파 제품의 범주에 들어선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과일을 요구르트 스무디 형태로 먹을 수 있는 세븐일레븐의 ‘스무디 얼음 큐브’ 또한 코스파를 강조한 제품이다. 과일이 비싼 일본에서 한 컵 가득 블루베리와 딸기, 사과 등의 과일을 넣고 여기에 요구르트까지 첨가되는데도 가격은 300엔 남짓이다. 이 제품은 과일이 담긴 컵을 전용기기에 넣고 약 70초를 기다리면 완성돼 나온다. 코스파 제품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2023년 3월부터 10월까지 약 2600만 잔이나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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