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통령선거 한가운데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지하철 점거 시위에 나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겨냥해 "비문명적"이라며 연일 저격했을 때 집권 여당 대표가 할 말은 아니라 생각했다. 물론 불법적 방식의 시위로 출퇴근 불편을 겪은 시민들은 전장연을 향해 불만과 비난을 쏟을 권리가 있다.
반면 한국 정치인에게는 그런 사태를 막을 만큼 '문명적 복지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책임이 있다. 수십 년간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복지지출 비중은 OECD 국가 중 여전히 꼴찌 수준이다. 주요 8개국(G8)을 바라보는 한국엔 부끄러운 일이다.
선거철 탈모인들에게 건강보험 적용 같은 선심 공약도 던지는 게 정치인들이다. 탈모인을 위한 건보 적용보다는 장애인 이동권 확대부터 관심을 기울이는 게 '문명적 정치'라 생각한다. 비록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전장연의 투쟁 결과를 보면 당혹스러운 게 너무 많다. 그들의 단체 이름처럼 연대를 만들고 공감을 확산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갈수록 '편'을 잃어가는 마이너스 투쟁처럼 느껴진다.
서울교통공사 제3노조는 최근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한 전장연을 향해 성명까지 내고 "당신들은 약자가 아니다. 약자인 척 가면을 썼을 뿐"이라고 직격했다. 노조는 통상 인권가치에 연대한다. 노조가 앞장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장애인에 대한 '약자' 관념을 부정하게 만든 건 뼈아픈 연대 이탈이다. 시민들 생각이 궁금하다면 전장연 관련 기사의 수많은 댓글을 보라. 전장연의 투쟁 방식은 이전엔 공개적으로 볼 수 없었던 장애인들에 대한 혐오를 만들고 있어 걱정이다. 지하철 점거에 이어 그들이 벌인 지하철역 '스티커 도배' 시위도 청소 노동자들이 떼어내기가 힘들어 '좀비 스티커'로 불린다. 같은 약자들부터 돌아서게 만들고 있단 얘기다.
이런 반달리즘식 인정 투쟁은 과거에도 사례가 있다. 소위 '가스통 할배'로 유명한 고엽제전우회와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HID)가 대표적이다. 국가 권력이 일부러 은폐하려 했던 역사적 피해자 단체이며 적절한 예우와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건 정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그들 목소리를 듣게 하는 대신 가스통을 메고 건물로 돌진하는 투쟁 방식으로 극단성의 기억만 남겨 보수마저 돌아섰다. 전장연도 이런 무이득한 투쟁의 장으로 전체 장애인들을 몰아넣은 건 아닌가.
전장연은 내년 1월 2일 새해 벽두부터 다시 출근길 점거 시위를 시작하겠다고 예고했다. 그간 정치권에 요구해온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예산 증액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조정권을 쥐고 있지만 국민 동의 없이 힘들다. 총선을 앞두고 한 표라도 아쉬울 판에 국민 밉상이 된 단체 요구가 먹힐까.
전장연 홈페이지에는 최근 '탈시설 장애인당' 창당 선언 내용이 올라왔다. 내년 총선 때 탈시설 장애인당으로 활동해 자신들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 이동권은 지하철 점거를 위한 명분일 뿐, 본 목적은 따로 있었나. 탈시설이란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는 약 2만9000명의 장애인들을 더 이상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내보내는 것을 가리킨다. 장애인 개별 돌봄 예산이 수조 원 필요한 일이다.
그들 뜻대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새해 벽두 지하철 점거 시위보단 차라리 당을 만들어 국회로 가서 따지는 게 맞는다. 그러고 보니 문제 시발점이 된 '탈시설 로드맵'도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졌다. 지금도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예산 편성을 당당히 요구하길 바란다.
[이지용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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