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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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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펭수·손흥민까지 등판, 크리스마스 씰 120년 역사 실화?[일큐육공 1q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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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 1904년 첫 시작

결핵 퇴치 위한 자그마한 아이디어에서 출발

조선시대 말기 국내 전파···거북선이 첫 도안

(영상) 역대 씰 이미지, 의미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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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성탄 시즌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씰(seal) 모금 운동. 단돈 3,000원에 얻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그림들은 조금 예뻐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 이걸 어디에, 어떻게 쓰라는 건지, 이런 건 대체 왜 파는 건지 궁금증이 샘솟는다. 알고 보니 조선시대에도 우리 조상님들은 크리스마스 씰을 사서 붙이고 다녔다는 얘기까지. 안 되겠다, 궁금한 건 두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일큐육공 수사팀이 120년 역사를 지닌 크리스마스 씰의 세계를 집중 탐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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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올해 국내에서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을 입수했다.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 캐릭터들이 올해 씰의 주인공이다. 그동안 김연아, 뽀로로, 펭수, 유재석, 손흥민까지 웬만한 유명인들은 한 번씩 얼굴을 비춘 바 있다. 씰 발행처는 대한결핵협회. 특별히 창립 70주년이라는 엠블럼도 보인다. 가만, 그림 속 조그맣게 표시된 붉은 십자가 두 개는 무슨 뜻일까?

크리스마스 씰의 역사는 무려 1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하자 유럽은 '결핵(tuberculosis)'이라는 질병으로 큰 고통에 빠진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살던 우체국 직원 아이날 홀벨은 크리스마스만 되면 쏟아지는 우편물들을 보다가 문득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린다. 쏟아지는 편지봉투 위에 자그마한 징표를 붙여서 마음을 표현한다면 그 기금을 모아 결핵을 퇴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디어는 덴마크 국왕까지 감동시켰고 1904년 드디어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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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 우표 옆에 작게 붙어있던 크리스마스 씰은 큰 감동을 주었다.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빠르게 늘어났다. 미국과 유럽, 남미, 중동지역에 이어 동양에서는 필리핀,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그렇게 오늘날 전 세계적인 모금운동으로 자리 잡게 됐다.

잠깐, 결핵이 대체 무슨 병이길래 전 세계가 씰 하나에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보인 걸까? 결핵은 주로 폐에서 발병되는 호흡기 질환으로, 신석기시대 유골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인류사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 왕국 아슈르바니팔의 점토판에도 '잦은 기침과 창백한 피부, 피가 섞인 가래' 등 결핵을 묘사하는 글이 발견될 정도다. 가까운 사람을 통해 주로 감염되고 창백하고도 새하얀 얼굴, 피를 토하는 모습 때문에 드라큘라나 뱀파이어 같은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독일 의사 로베르트 코흐가 1882년 결핵균을 최초 발견한 뒤에도 70년 가까이 지난 1950년대 들어서야 치료제가 개발된다. 한 번 감염되면 잠복기가 수십 년에 이르기도 하고 내성 결핵균까지 등장해 바이러스 완전 퇴치는 요원하다. 여전히 세계 인구 3분의 1이 결핵에 감염된 환자로 분류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만 제외하고 인류를 가장 많이 사망케 하는 감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즘 내 주변에는 결핵에 감염된 사람을 절대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발생률 세계 2위, 사망률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결핵균은 가난과 영양결핍, 흡연, 음주,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 6.25 전쟁을 거치며 우리나라에 널리 확산됐다. 지금까지도 연간 2만 명의 결핵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데, 그중 새로운 감염자는 1.6만 명(인구 10만 명당 31.7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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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모금운동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첫 실행됐다. 때는 조선시대 말기인 1890년, 제때 치료도 못 받고 사망하던 조선의 여성들을 돌보기 위해 미국 여의사 로제타 홀이 입국한다. 조선 최초의 여성전문병원 '보구녀관'에서 일하며 조선 최초의 여의사 에스더 박도 길러낸다. 로제타 홀의 아들 셔우드 홀은 에스더 박을 친누나처럼 따랐는데, 에스더 박이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게 되자 그도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의사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 셔우드 홀은 평생 결핵 퇴치에 힘쓰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활동이 바로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이다.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에 등장한 주인공은 1932년 발행된 숭례문. 원래 도안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으로 그렸는데, 일제의 검열 우려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책 읽는 아이들, 아기를 업은 부인, 널뛰기하는 아이들, 팽이 치는 소년 등 당시 조선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씰에 담겨오다 1940년, 전쟁 중이던 일본의 생트집으로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게 되면서 씰의 명맥이 끊기는 듯 했다.

1953년 대한결핵협회 창립과 함께 씰 모금 운동은 다시 되살아난다. 그해 도안은 색동저고리 입은 단발 소녀. 당시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았다. 1954년에는 6.25 전쟁 후 폐허 속 소년의 이미지를 담아 전쟁의 아픔을 그려냈다. 국민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도안 공모전을 열기도 하고 디자인을 꾸준히 개선한 끝에, 1988년 김현 작가의 ‘농악놀이’가 국제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글로벌 1위를 수상하게 된다. 이후 우리나라 전통 문화, 한국의 나비와 꽃 시리즈,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 등을 담으며 글로벌 대회에서 7번이나 1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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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모금률이 갈수록 떨어지자, 2003년부터 스티커 형태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2007년엔 전자파 차단 스티커나 책갈피, 키링, 머그컵 등 실용성 높은 상품을 개발해 일명 '그린씰'을 동시에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결핵에 대한 인식이 낮다 보니 모금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2017년 이후 크리스마스 씰에는 기부금 활용 내역서가 함께 표시되고 있다.

한편 씰에 표시된 빨간 십자가 두 개는 '복십자'라고 부르는데, 십자군 전쟁 당시 잔다르크의 상징이기도 한 '로렌 십자가'에서 따온 것으로 용맹한 잔다르크처럼 결핵균을 휩쓸어버리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120년 역사를 이어온 다양한 크리스마스 씰 이미지들과 그 이면의 자세한 이야기들은 서울경제신문 유튜브 채널 '일큐육공 1q60'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강신우 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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