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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르포] 경복궁 담장 낙서 '초고속' 제거 작전..."할 수 있는 건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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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경복궁 담벼락 앞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전날 누군가가 스프레이로 쓴 낙서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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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리차 좀 드시면서 하세요!"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진 1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방면 쪽문으로 박물관 직원이 따뜻한 보리차를 담은 보온병을 내왔다. 쪽문 양옆으로 약 38.1m 길이로 가림막과 펜스가 둘러져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작은 틈새로 새어 나오는 "뚝딱뚝딱" 하는 마찰음만이 이곳이 '낙서 테러'를 당한 경복궁 담장 복원 작업 현장임을 일러주었다.

가림막 뒤에선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 관리소 보수정비단의 직원 10명이 담장에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낙서를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16일 새벽과 17일 밤에 발생한 '낙서 테러'로 국립중앙박물관 직원들을 포함해 전국의 문화유산 보존처리 전문가들이 경복궁으로 집결한 터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40명 정도가 교대로 근무할 예정"이라며 "(모방범죄에 따른) 17일 2차 낙서 때문에 (지우는 데)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낙서 지울 수만 있다면... 샘플테스트 없이 즉시 착수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17일 시작된 복구 작업 분위기는 이같이 요약된다. 이번 작업은 실제로 전례가 별로 없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 복원 작업을 할 때는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최적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오염물 성분 분석 결과와 문화재의 재질·종류 등을 고려해 샘플 테스트를 먼저 하고 복원 작업에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2007년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삼전도비'가 붉은 스프레이로 오염됐을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끝에 3개월 걸려 복구 작업을 마쳤다.

이번 경복궁 담장 복원팀은 이 같은 통상적 방식을 쓰지 못한 채 현장에서 시험한 방식을 즉석에서 적용하고 있다. 맹추위 때문이다. 복구 전문가들은 "(화학약품을 걷어내기 위해) 아무리 스팀을 쏴도 바로 얼어버린다"고 성토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스프레이 잉크가 담장 깊숙이 스며드는 만큼 날이 풀리기를 기다릴 수도 없다.

①화학약품 ②물리적 제거 ③레이저 장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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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를 작업자가 레이저 장비를 이용해 지우고 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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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문화재의 세척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건식세척, 습식세척, 블라스팅(연마제가 포함된 압축 공기나 물을 분사해 세척), 화학세척, 레이저세척 등이다. 경복궁 현장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방법을 동시다발적으로 쓰고 있었다.

작업팀은 첫날 시너를 포함한 화학약품부터 썼다. 잉크를 전반적으로 빠르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작업 현장에선 매캐한 시너 냄새가 풍겼다. 이후 그라인더, 망치, 솔, 끌 등을 이용해 석재 표면을 물리적으로 갈아냈다. 마지막으로는 미세한 틈에 낀 잉크를 전부 파내기 위해 레이저 장비로 마무리한다. 피부를 매끄럽게 하는 피부과 레이저 시술과 흡사한 원리다.

레이저 장비는 한 번에 작업 가능한 면적이 손톱 크기인 데다 장비도 2대밖에 없어 긴 시간이 소요된다. 암석 종류에 따라 훼손 우려도 있다. 정소영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담장은 2010년에 복원된 것이라 강도가 충분해 레이저 작업을 진행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작업팀은 19일부터는 영추문 방면 담장에 블라스팅 방식을 쓸 예정이다. 고궁박물관 쪽 담장은 가로와 세로 각 20㎝ 규격의 돌을 쌓고 줄눈으로 마감한 '사고석 담장' 형태이지만, 영추문의 판석은 사람의 어깨 넓이보다 훨씬 커서 작업하기 수월하다는 판단에서다. 블라스팅은 비교적 넓은 면적에 유리하다.

다급한 복원보다는 근본적 해결에 무게를


숭례문 부실 복원의 선례가 있는 만큼 너무 다급하게 접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이강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복원 작업은 보존과학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맞지만, 오염 성분 분석이나 테스트 과정 없이 모든 세척 방법을 동원할 만큼 (경복궁 담장 복원에) 본질적인 시급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연말 인파가 집중되는 도심 지역에 발생한 일이라 정부는 서둘러 지우고 싶겠지만 안전하고 정확한 프로세스를 밟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18일 폐쇄회로(CC)TV를 추가 설치하는 등 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복궁에는 모두 429개의 CCTV가 설치돼 있고 담장 외부에는 14대가 운영되고 있는데, 향후 외부에 20여 대의 CCTV를 추가로 설치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유산 훼손에 대해서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며, 경찰과 공조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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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가 이틀째 이어진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경복궁 영추문 앞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복구 작업을 위해 가림막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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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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