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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한번쯤 가만히 들어주세요…왜 그렇게 힘들고 아파했는지[아듀 2023 송년 기획-상처 난 젊음, 1020 마음건강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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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때,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았다 - 나의 아픔 말하기

경향신문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에서 피어스페셜리스트(청소년 정신건강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정수연(가명·왼쪽)·박지은씨(가명)가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구 거리를 걷고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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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관계 문제, 가정·학교폭력…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심한 우울감
온몸이 아프고 숨도 잘 안 쉬어져

마음의 상처는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프다’고 말해야 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5~16일 각기 다른 이유로 우울과 불안을 경험한 5명의 청소년·청년들을 만났다. 이들은 수많은 시간을 거쳐 ‘아픔을 말하기’에 나섰다.

상처의 모양과 역사는 이제 ‘나’를 이루는 고유한 특성이 됐다. 이들은 ‘나’의 한 부분인 상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이야기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또래들에게는 위로로, 기성세대에는 경종으로 가닿길 원한다고 했다. ‘우울’이라는 결과보다는 ‘왜 우울했는지’ ‘왜 죽고 싶었는지’ 이유에 집중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주변 어른들과 사회가 청소년의 아픔을 자신만큼 잘 알게 되어, 고민한 후에 도움을 주길 바랐다.

이민솔양(18·가명)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힘들고 우울하다’고 느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성격이 많이 내향적이었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잘하지 못했고요. 아무래도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어요.” 중학생이 되어 친한 친구와 반이 갈린 뒤로 학교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열여덟 살 때쯤 심한 우울감을 느꼈다는 박지은씨(22·가명)도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박씨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는데 신체 증상이 같이 왔다”며 “아침에 일어날 땐 이유 모를 근육통으로 상체가 너무 아팠고, 스트레스를 받아 목에 걸리는 느낌 때문에 밥도 아예 못 먹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괜찮았다가 갑자기 우울해지는 일을 반복했다.

정수연씨(22·가명)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부모의 이혼 이후 형제의 폭력에 시달렸다. 정씨는 “몇년간 지속적인 폭력에 외상후스트레스 증상이 계속 나타났다”고 말했다. 성추행 피해까지 겪은 정씨는 ‘사건 처리’를 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정씨가 느끼는 우울감은 더 심해졌다.

이들은 아픈 마음에 대해 처음엔 잘 알기 어려웠다고 했다. 정신건강의 문제라고 스스로 인지하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정씨는 “그때는 ‘우울’이라는 단어를 잘 몰랐을 때니까 그냥 힘들고 괴로운 느낌이 너무 강했어요. ‘지금 내가 계속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힘든 건지를 모르겠다는 거죠. 기가 많이 죽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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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팍 터지듯이 하게 된 ‘자해’
스스로 몸에 상처 낸 그 순간
아프기보단 살아있단 느낌이 들어

일상을 유지하기 힘든 아픔의 날들 뒤로는 충동적인 자해와 자살 시도가 이어졌다. “교실에 들어가면 숨을 못 쉬었어요. ‘위클래스’(상담실)로 등교하곤 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앞으로는 조퇴나 지각, 결석은 절대 안 된다’ ‘무조건 교실에서 수업 듣고 급식실 가서 밥 먹어라’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날 ‘어떻게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방에 들어가서 처음 자해를 했어요.”(이민솔) 이양은 “어떤 생각을 하고 움직인 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뭔가 딱 ‘터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김혜미양(17·가명)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자해를 했다. 학교와 학원, 집을 오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지쳤을 때였다. 김양은 “‘중학교에 안 가면 나는 죽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승훈군(18·가명)은 초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겪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자해를 했다. 최군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고 툭하면 눈물이 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스스로 상처를 낸 그 순간에 역설적으로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양은 “나도 모르게 (자해를) 하고 나니까 아프지도 않고 시원했다.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최군은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의 공통된 심리가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낀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저도 그랬다”고 말했다. ‘죽고 싶은 마음’은 ‘죽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은 말이었다.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붙든 이양은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며 “스스로 죽고 싶은 나로 세뇌했던 것 같다”고 했다. 정씨는 “죽고 싶어하는 나 자신과 악착같이 싸웠다”고 했다.

상태나 증상만 보고서 혼내거나
억지로 위로의 말 하는 것보다
옆에 있거나 들어줬을 때 위로감

이들은 죽고 싶은 마음과 치열하게 싸울 때는 주변인의 지지가 큰 힘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최군은 “자해까지 가지 않도록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너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는 안정감을 형성하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양은 “일단은 ‘증상’에 집중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그냥 그렇게 된 마음과 감정,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에 집중을 해야지 그냥 증상만 보고 혼을 내는 것이 가장 안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박씨는 “옆에서 ‘힘내 할 수 있어’ 이렇게 위로의 말을 막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 들어달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거기에 공감한다”며 “문제에 대해서 파고드는 것보다 계속 들어주는 것(이 좋은 거 같다)”고 했다.

“이런 일도 있어요. 너무 힘들어서 아예 그냥 방 안에만 계속 있었던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이 문을 막 두드려서 방에 들어갔대요. 그러고는 그 친구에게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그냥 놀다가 먹다가 있다가 갔대요. 근데 그게 너무 위로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혼자서 삭히다 보니까 충동도 생기고 더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아서요. 그냥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박씨)

경험으로 ‘피어스페셜리스트’ 활동
같은 일 겪는 또래에게 도움 주고
사회에도 정신건강 문제 알리고파

인터뷰에 참여한 5명은 모두 비영리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에서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로 활동하고 있다. ‘아픔을 경험한 동료 전문가’란 의미다. 멘탈헬스코리아는 2017년 설립해 정신건강 서비스의 소비자 권리강화, 청소년 정신건강 교육 프로그램 개선, 청소년 리더십 교육 등 사회사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피어스페셜리스트 활동을 “나의 아픔은 나의 강점이 된다”는 말로 설명했다. 강연과 상담도 진행하고 소소한 모임에서 경험을 나눈다. 자신들이 그랬듯이 이러한 것이 회복 과정으로 가는 ‘하나의 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은 현행 정신건강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찾아내기도 한다. 경향신문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들은 정신건강 문제를 각자 경험한 일들에서 비롯된 개인의 문제이면서 집단 공동의 문제로도 생각했다.

박씨는 “아픔을 숨기는 게 아니라 아픔 자체가 그냥 스펙이 되는 것”이라며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또래들도) ‘나는 아파봐서 저 사람을 더 도울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방송·영상 관련 과에 재학 중인 박씨는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담고 싶다고 했다.

정씨는 최근 10대·20대의 정신건강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을 두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교육과정에 말 못하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이 너무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아직 한국사회는 정신건강에 대해서 편견이 있거나 무관심하고, 그래서 관련 기사에 악플들이 달린다”며 “그런 게 쌓여서 아직도 ‘너만 힘든 거 아니다’ ‘정신적으로 안 자랐구나’ 이렇게 말한다. 이런 걸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하는 또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아픈 건 잘못이 아니에요. 여전히 사회가 안 좋게 바라보는 시선이 크지만 그 시선이 잘못된 것이지 당신이 아픈 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오늘도 살아내줘서 버텨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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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영·김향미·김태훈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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