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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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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밥 먹게 해주겠다”... 숨진 사립초 기간제 교사, 학부모 폭언에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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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도 죽었다” 父 호소에 서울 교육청 조사 착수

조선일보

15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올해 1월 사망한 상명대부속초 기간제 교사의 아버지가 유가족 입장을 밝히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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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지난 7월 알려졌던 서울 사립초 기간제 교사의 극단적 선택 사건의 배경엔 학부모 폭언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기간제 교사는 “콩밥 먹게 해주겠다” “교단에 설 수 없겠다” 등의 폭언을 들었다고 주위에 상담하고, 우울증 치료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교육청 공익제보센터는 1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 상명대학교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 기간제 교사 A씨의 사망 사건 민원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이 학교에서 2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했고, 올 1월 15일 숨졌다.

교육청 측은 “학부모의 과도한 항의와 협박성 발언으로 고인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것이 사실로 인정된다”며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유가족 측은 폭언 학부모를 형사고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3월 상명대부속초 기간제 교사로 처음 교단에 서자마자 2학년 담임교사를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쿨버스로 등교하는 사립초 특성상 일반 초등학교 교사보다 50분~1시간 가량 먼저 출근해야 했고, 초과근무가 빈번 했다. 이 학교가 담임교사 개인 연락처를 학부모에 공개하도록 해, 퇴근 후나 주말에도 학부모 연락을 수차례 받아야 했다. 유가족 측은 “1학기 세 달 동안 학부모에 받은 메시지가 1500건이 넘었다”고 하기도 했다.

결정적 사건은 지난해 6월초 교실에서 학생 4명이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학교폭력이라고 하기엔 가벼운 몸싸움이었지만, 가해·피해학생을 가리고 사과하게 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의 불만을 샀다. 특히 사과를 요구받은 한 가해 학생의 아버지·어머니가 ‘피해학생이 평소 행실에 문제가 있는 사실을 무시하고 편파적으로 사건을 중재한다’는 취지로 A씨에게 수차례 거센 항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가족·지인 등 주위에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는 “한 학부모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생난리를 쳤다”는 내용 등이 남아있다. “경찰에 고소하겠다” “고소하러 가는 중이다” “교육청에 신고해서 교직에 설 수 없게 하겠다” “옷을 벗게 하겠다” “콩밥을 먹게 하겠다” 등의 협박·폭언도 들었다고 호소한 사실도 확인됐다. 유족 측은 “특정 학생 학부모들이 이 같은 항의를 일주일 가량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고인이 방문한 정신건강의학과에도 이 같은 내용을 호소한 상담 기록이 남아있었다. 결국 고인은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을 한 뒤, 사망 전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 측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신청서를 접수할 계획이다. 폭언, 협박을 한 학부모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교육청 조사에 응한 학부모 등은 협박·폭언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청은 학교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초임 기간제 교사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학교나 교장·교감 등 관리자가 망인의 어려움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리적 지지를 해줬어야 했는데 미흡했던 것은 맞는다”면서도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지 매뉴얼 등이 없어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했다.

학교장 측은 “A씨가 학부모 항의를 받고 있는 것은 알았으나 가벼운 갈등이라고 생각해 정교사 선배에게 A씨를 도우라고 지시했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교직 3단체와 공동기자회견’ 현장에서 유가족이 A씨 사망 원인 진상 규명을 요구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유가족은 조희연 교육감에 “내 딸도 몇 개월 전 똑같이 죽었는데, 우리 딸은 꽃도 한 송이 못 받고 죽었다”고 오열하며 사안을 조사해달라 요구했었다.

다만 유족들이 고인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해제하려 시도하다 휴대폰이 초기화됐고, 교육청 조사 특성상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 학부모·동료교사 등의 조사가 불가능한 한계가 있었다고 교육청 측은 밝혔다.

[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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