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27 (토)

새벽·휴일 근무 항의하며 무단결근한 워킹맘…대법 “채용 거부 부당”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휴일·새벽 근무 지시에 항의하며 무단결근한 ‘수습 워킹맘’의 채용을 거부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배려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업주에게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명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도로관리용역업체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세계일보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는 2008년부터 도로 통행료징수 및 지원을 하는 용업업체의 영업관리팀 소속으로 일해왔다. A씨는 고유 업무 외에 고속도로의 요금 수납을 관리하는 수납원 업무도 담당하고 있었다. A씨가 속한 팀은 업무 특성상 매월 3∼5차례 오전 6시∼오후 3시 초번 근무를 해야 했다. A씨는 출산 및 자녀 양육을 이유로 초번 근무를 면하고 소속 팀의 팀장이 이를 대신해왔다. 업체는 또 주휴일과 근로자의날만을 휴일로 인정하면서도 일근제 근로자들은 공휴일에 연차 휴가를 사용해 쉴 수 있도록 했고, A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4월 새로운 용역업체가 들어오고 수습 기간을 3개월로 정한 근로계약을 새로 체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새 업체는 A씨에게 다른 직원들과 동일하게 초번·공휴일 근무를 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당시 6세와 1세 자녀를 둔 워킹맘이었다. 업체 측은 항의하는 A씨에게 “영업관리팀 근무 특성상 공휴일 휴무는 불가하다”고 회신했다. A씨는 불복해 두 달간 초번·공휴일 근무를 무단결근했다. 업체 측은 A씨의 근태를 이유로 기준 점수 미달이라며 그해 6월 채용 거부 의사를 통보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A씨에 대한 채용 거부를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사측이 불복하면서 소송으로 이어졌고 1심은 A씨의 손을, 2심은 회사의 손을 들었다.

2심은 “사측은 A씨의 초번 근무 시 자녀 어린이집 및 유치원 등원 시간에 맞춰 외출을 허용해줬다“면서 “이후 A씨가 공휴일 근무를 거부하자 ‘무단결근이 지속되면 외출 편의를 봐줄 수 없다’는 취지로 언급했고, A씨는 무단결근 시정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초번 근무지시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2심은 이어 “24시간 도로 통행료징수 및 지원을 해야 하는 A씨 회사의 영업관리팀 업무 특성상 영업관리팀 소속 직원의 경우 일정 부분의 공휴일 근무 및 초번 근무 분담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4년 가까운 심리 끝에 이 같은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A씨가 육아기 근로자라는 사정만으로 근로계약과 취업규칙상 인정되는 초번, 공휴일 근무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면서도 “회사가 육아기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채용을 거부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해 채용 거부 통보의 합리적 이유,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5는 사업주가 육아기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 시간을 조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대법원은 “수년간 지속한 근무 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꿔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큰 저해가 되는 반면 (그렇게 할) 회사의 경영상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