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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1·2심 엇갈린 국가면제 뭐길래…위안부 판결, 영구미제로 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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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지난달 23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확정됐다. 일본이 무대응 원칙으로 기한 내에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평화에 위치한 평화의소녀상에 경찰의 접근금지 시설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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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국내 법원 판결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받을 권리를 확보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재판 관할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실질적 배상은 또 요원해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간 미래 협력이 본격화하는 것과는 별개로 과거사 피해자들을 위한 사법정의 실현은 여전히 미완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23일 일본 정부가 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6명에게 1인당 2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일본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9일 확정됐다. 일본 정부가 상고를 포함, 재판 절차에 일절 참여하지 않은 근거는 ‘국가 면제’다. 국가면제는 특정 국가의 사법부가 제3국 정부를 사법적으로 판단하고 벌하는 것은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보는 국제법적 원칙이다.



1·2심 엇갈린 ‘국가면제’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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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팔을 들며 기뻐하는 이용수 할머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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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국가면제 문제는 한국 사법부 내에서도 서로 상반된 판결이 나올 정도로 첨예한 문제다. 2심 판결에 앞서 2021년 4월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적용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을 각하했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일각에선 전시 성폭력 등 반인권적 전쟁 범죄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또 다른 국제법 원칙인 ‘강행규범’은 노예매매·집단학살·고문 등 보편적 인권을 유린한 반인도적 범죄의 경우 국가의 주권보다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 회복을 우선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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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재판부가 자체적으로 국가면제 여부를 판단하는 사례가 누적될 경우 각 법원마다 상반된 판결이 나오는 사법 혼란은 물론 외교적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한국 정부도 국가면제 원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과 관련, 한국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재판부는 대한민국이 소를 제기한 베트남인에게 31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정부 관계자는 “서방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선 국가 범죄나 외교 행위에 대해선 애초에 재판 자체를 자제하는 ‘사법자제의 원칙’이 제도화돼 있다”며 “범죄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사법부의 판단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할 경우 외교적 협의와 협상을 통해 이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사법정의’ 실현 가능한가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일본 정부의 배상금 지급을 명한 판결을 이행할 현실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2018년 일본 전범 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의 경우 피고의 배상금 지급이 지연되자 강제 현금화 조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위안부 판결의 경우 피고는 기업이 아닌 일본 정부다. 현금화 조치를 위해선 일본 정부의 국내 자산을 강제로 매각해야 하는데, 주한 일본 대사관을 비롯한 외교 자산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보호받기 때문에 강제 집행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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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양 정상은 올해에만 총 7차례의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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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화가 가능한 일본 정부의 재산을 찾는다 해도 이를 추진하는 건 한·일 양국 간 외교 악재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판결 이행과 관련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현금화하는 조치에 대해 “강제 집행이나 현금화로 판결이 실행되는 방식은 한·일 관계에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국제법상 국가면제는 재판 단계에서는 물론 재판이 끝난 이후 판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적용되는 원칙”이라며 “이번 판결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사법적으로 승리했지만, 판결 이행을 위해 주한 일본 대사관 재산이 강제로 매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 존중한다”지만 멈춰선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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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명시한 위안부 합의에 서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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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판결과 관련, 외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국가 간 합의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양국이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에 뜻을 모은 만큼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을 압박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본 역시 판결을 인정하지 않되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는 것은 국가 간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 태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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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의 핵심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키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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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위안부 합의를 존중한다는 표면적 입장과 달리 지난 5년간 합의 정신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2018년 11월 문재인 정부 당시 위안부 합의의 핵심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키로 결정하면서도 합의 자체는 파기하지 않는 애매한 입장으로 일관한 탓이다. 재단도 해산 절차가 완료됐지만, 법적인 청산 절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단 청산을 위해선 일본의 출연금 중 잔금 56억원에 대한 처분 계획서를 작성·집행해야 한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실제론 합의 자체를 수면 아래에 가둬두고 움직이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이어졌다”며 “위안부 판결 이후 국내적 과제인 피해자 설득과 명예·존엄 회복을 위해서라도 합의의 산물인 화해치유재단의 애매한 법적 상태를 종결짓고, 일본의 출연금을 합의 정신을 이행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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