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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새벽일 못 시켜 해고, 워킹맘이 이겼다…‘회사 육아지원’ 첫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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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휴일근무 어렵자 채용거부…부당해고 인정

대법, 회사의 육아지원 노력 의무 첫 판례 제시


한겨레

워킹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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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녀를 키우는 노동자에게 새벽·공휴일 근무를 강요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채용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해고’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업주는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법조문을 대법원이 ‘사업주에게 배려의무가 있다’로 적극 해석한 데 따른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 해당 조문에 대한 첫 판례로 향후 관련 사건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08년부터 고속도로 영업소에서 일한 ㄱ씨는 5살 터울로 두 자녀를 얻은 뒤에도 '워킹맘'으로 줄곧 일해왔다. 회사는 ㄱ씨 사정을 배려해 매달 3∼5차례 돌아오는 초번근무(오전 6시~오후 3시)를 면제해줬다. 공휴일엔 ㄱ씨를 비롯한 모든 일근제 노동자(교대직과 달리 낮근무를 통상적인 근무형태로 하여 매일 근무)가 쉴 수 있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근무환경은 2017년 4월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무너졌다. 당시 ㄱ씨의 아이는 1살, 6살이었다.

기존 직원들과 수습기간을 거친 뒤 본채용하는 시용계약을 맺은 새 용역업체는 ㄱ씨에게 초번 근무를 하다가 자녀 어린이집 등원 시간에 외출하라고 했고, 공휴일 근무도 지시했다. ㄱ씨가 ‘오랜 근무형태를 하루아침에 변경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하자 업체는 초번근무 중 외출마저 금지했다. 이에 ㄱ씨는 두 달간 초번·공휴일 근무를 거부했다. 수습기간 3개월을 거쳐 고용승계가 된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결국 ㄱ씨는 ‘본채용 거부통보’를 받았다.

ㄱ씨는 2017년 7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고 최종적으로 중앙노동위원회는 ㄱ씨에 대한 채용 거부를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하지만 회사가 이에 불복해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은 ㄱ씨 손을 들어줬으나, 2심에선 24시간 통행료를 징수해야 하는 업체 사정이 고려돼 회사가 이겼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회사가 육아기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 의무를 다했는지 다시 심리하라’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5는 육아기 노동자(만 8살 이하 자녀의 부모)의 육아 지원을 위해 사업주가 근로시간 조정 등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 조항 ‘노력해야 한다’에서 ‘사업주의 배려의무’를 도출한 뒤 회사가 이 사건에서 배려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신규채용이 아닌 고용승계 상황이라 채용 거부의 타당성을 더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회사는 ㄱ씨가) 초번근무 시간이나 공휴일에 근무할 경우 양육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수년간 지속한 근무 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꿔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을 요구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큰 저해가 되지만 (공휴일 근무를 지시할) 회사의 경영상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자녀 양육 부담으로 발생하는 근무상 어려움을 육아기 근로자 개인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한다고 볼 수 없고, 사업주는 육아기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배려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사업주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도출해 명시한 첫 판결”이라며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의 구체적 정도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도 처음 제시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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