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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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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경제난 속 이집트 대선…"가자 난민, 정권 연장에 축복이자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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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인접국이자 주요 중재국 중 하나인 이집트에서 10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가 시작됐다. 현직 대통령 압델 파타 엘 시시(69)의 3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선거 직후 그가 가자 난민 해법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시시 3기’의 명운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과 아랍 매체 더뉴아랍(TNA) 등은 이집트 대선에 대해 “주목할 점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이집트의 기록적인 경제난과 가자 전쟁 여파에 대한 차기 정부의 선택”이라고 짚었다. 이집트 대선은 12일까지 3일간 진행되며, 선거 결과는 18일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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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거리에 압델 파타 엘 시시 현 대통령의 대선 현수막이 걸려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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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대통령은 국방장관이던 2013년, '아랍의 봄'(2011년) 이후 첫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했다. 이어 2014년과 2018년 대선에서 모두 각각 9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번 대선에도 투표 전부터 시시 대통령의 압도적인 승리가 기정사실화됐다. 함께 출마한 다른 세 후보(사회민주당의 파리드 자흐란, 신와프드당의 압델 사나드 야마마, 공화인민당의 하젬 오마르)는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다. 미국 워싱턴 소재 비영리단체 타흐리르 중동정책연구소의 티모시 칼다스 부소장은 “다른 후보는 아예 경쟁할 기회도 없고 승리할 가능성도 없다”고 말했다.

시시 대통령은 2019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현직 대통령의 3연임을 허용했다. 이로써 3선에 성공하면 그의 임기는 2030년까지 총 16년으로 연장된다. 이집트 정치 연구원인 셰리프 모하옐딘은 “결과가 정해진 선거에 유권자의 관심도 낮아 투표율은 50%를 밑돌 것”이라고 TNA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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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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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외채 상환액 37조원 달해



문제는 선거 이후다. 이집트는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알자지라는 시시 대통령이 지난 10년간 신(新) 행정수도 건설, 도로와 전력 인프라 현대화, 수에즈 운하 대규모 확장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잇따라 벌이면서 외환보유고를 바닥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곡물가가 72% 이상 뛰어오르면서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시시 대통령은 자금 조달을 위해 외국에서 천문학적인 차입금을 끌어다 썼고, 결국 그의 집권기에 이집트 외채는 4배로 불어났다. 이집트가 내년에 상환해야 할 액수만 280억 달러(약 37조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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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구시가지에서 배달원이 자전거를 타고 빵을 배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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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의 구제금융을 약속받았지만, 이집트 정부가 IMF와 약속한 예산 삭감과 변동 환율로의 전환 등을 미루면서 3억4700만 달러(약 4500억 원)만 지원받는 데 그쳤다. 호주 매체 더컨버세이션은 “이집트인들은 1977년 빵폭동 이후 볼 수 없던 빈곤 수준에 처했다”고 전했다.

선거 이후 이집트 경제는 더 큰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이집트파운드(EGP)의 가치는 1달러당 31EGP 수준인데, 암시장에선 45EGP에 거래되고 있다. TNA는 “암시장 거래가가 실제 화폐 가치를 반영한 것으로, 고시 환율과 괴리가 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집트 중앙은행이 선거 직후 통화 평가절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센터의 주세페 덴티스 연구원은 “IMF와 국제 파트너들이 이집트의 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압박 수준이 매우 강하다”면서 “시시 대통령은 3선이 결정되면 즉시 일련의 경제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가자 난민 처리, 경제에 최대 변수



총체적 난국에 빠진 이집트 경제에 가자 전쟁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폭격이 쏟아지고 있는 포위된 가자의 상황은 시시 대통령에게 축복이자 저주”라고 전했다.

이집트가 쥔 열쇠는 ‘가자 난민’이다. 지난달 이스라엘에서 유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시나이 반도로 추방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현재 경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에 나선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TNA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서방 국가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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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남부 공습으로 부레이 난민 수용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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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유럽연합(EU)은 가자 전쟁으로 유럽에 난민 유입이 급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샤를 미셸 유럽평의회 의장은 지난 10월 이집트를 방문해 가자지구를 탈출하는 수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수용하는 국가에 대한 지원 패키지를 마련할 것이라 강조했다. 이어 미셸 의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집트를 지원하자”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의 마가리티스 시나스 부위원장도 “이집트가 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IMF 역시 가자 전쟁 이후, 이 지역의 피해 국가에 대한 지원 강화를 암시했다. 이집트로 갈 지원액 30억 달러를 50억 달러(6조5500억 원)로 늘리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실제로 이렇게 되면 내년 이집트의 부채 상환 부담이 줄게 된다.

현재 시시 대통령은 ‘안보 위협’ 등을 들어 가자 난민 수용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집트 정부는 "난민에게 시나이 반도를 개방할 경우 하마스보다 더 극단적인 집단이 자리잡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세력이 시나이 반도를 거점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면, 이는 양국이 1979년 맺은 평화조약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국방연구소의 모하나드 사브리 연구원은 ”자칫 시나이반도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터가 될 수 있다“고 WSJ에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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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미셸 유럽평의회 의장이 지난 10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평화정상회담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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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들은 실용주의자이자 기민한 전략가인 시시 대통령이 국가 파산 사태에 내몰리는 대신, 가자 난민 문제의 인도주의적 해결과 재정 지원을 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덴티스 연구원은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해 난민을 재정착시키는 대가로 빚을 탕감해주는 지원을 받아 들이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집트의 중동·아랍문제 정치 컨설턴트인 야신 아슈르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시나이 반도에 몰려들면, 장기적으로 이집트 사회의 역동성을 해치게 되고 장기적으로 경제 상황도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틀랜틱카운슬은 ”가자에 대한 선택이 시시 대통령의 세번째 임기의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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